[통합돌봄] “등급 밖 어르신”은 어디에서, 어떻게 도울 것인가

“등급이 안 나와서” 멈춘 돌봄… 제도의 빈틈에 놓인 어르신들
돌봄의 사각지대를 없애려면, 제도보다 ‘연결’ 먼저 선행돼야
  • 구재회 기자
  • 발행 2025-11-07 10:30

▲ 등급 기준에 막혀 돌봄을 받지 못하는 어르신들을 위해, 직접 찾아가 연결하는 현장 중심의 통합돌봄이 절실하다. [사진=셔터스톡]

“등급이 안 나와서” 멈춘 돌봄

“70세 어머니는 거동이 불편해 하루 종일 누워 지내신다. 가족들은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고 싶었지만 ‘등급이 안 나왔다’는 이유로 지원을 받지 못했다.” 이 짧은 사례 안에 우리 사회 돌봄의 빈틈이 담겨 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은 일정한 ‘등급’을 받아야만 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스스로 생활하기는 힘들어도 등급 기준에는 조금 못 미치는 어르신들, 치매가 막 시작된 분들이나 낙상 위험이 높은 분들, 몸 상태가 좋아졌다 나빠졌다 하는 분들은 제도의 문턱에서 자주 지원이 끊긴다.

이런 분들을 돕기 위해서는 ‘찾아가는 노인심부름센터’처럼 현장을 직접 방문하고, 필요한 서비스를 연결해주는 새로운 돌봄 체계가 필요하다. 이런 현장 중심의 돌봄이 통합돌봄의 성패를 가른다.

장기요양 ‘등급’, 어떻게 정해질까


장기요양등급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일상생활 수행능력, 인지기능, 행동변화 등 90여 항목을 조사해 1~6등급(및 인지지원)을 판정한다. 등급이 높을수록 신체·인지 기능저하 정도가 커 돌봄 필요성이 높다는 의미다.

등급이 확정되어야 방문요양, 주‧야간보호, 단기보호, 복지용구, 시설입소 등 다양한 서비스가 연결된다.


문제는 ‘기준선(컷오프)’ 바로 아래에 있는 어르신들이다.


치매 초기라 인지지원등급만 받은 분, 스스로 식사는 가능하지만 낙상 위험이 큰 독거 어르신 등은 실제로는 도움이 절실해도 제도상 급여를 충분히 받지 못한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 결국 지역사회가 그 빈자리를 떠안게 된다. 가족들의 부담이 커지고, 어르신이 갑자기 응급실로 가거나 요양시설에 일찍 들어가야 하는 일도 늘어난다.

왜 사각지대가 생기나

돌봄의 사각지대는 여러 이유가 겹쳐서 생긴다.

기준선의 벽: 점수로 등급을 매기다 보니, 기준선 바로 아래의 어르신은 지원 대상에서 빠지기 쉽다.
조사 방식의 한계: ‘평균적인 하루’만 평가하기 때문에, 몸이 유난히 힘든 날이나 계절·환경에 따라 위험이 커지는 상황이 반영되지 않는다.
인지지원등급의 빈틈: 치매 초기라도 밤 시간이나 위험 행동이 많으면 더 돌봄이 필요하지만, 현재 제도는 그 수요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다.
시간 고정형 서비스: 돌봄이 시간 단위로 고정돼 있어 야간이나 주말처럼 갑자기 도움이 필요할 때 지원이 어렵다.
▲ 연결의 끊김: 방문간호, 생활지원, 의료, 지자체 안전관리 등 여러 기관이 함께 움직여야 하지만 아직은 연계가 매끄럽지 않다.


현장으로 가는 돌봄, 이렇게 메운다

‘찾아가는 노인심부름센터’는 단순히 장을 봐주거나 약을 대신 찾아주는 곳이 아니다.


어르신의 생활 속 위험 신호를 미리 알아차리고, 필요할 때는 보건소·병원·지자체 등 여러 기관이 함께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연결하는 ‘돌봄의 연결 중심(생활 속 케어 허브)’ 역할을 해야 한다.


▲ 먼저 찾아가는 돌봄: 등급이 아직 결정되지 않았거나 치매 초기 단계인 어르신들을 미리 방문해 안전 상태를 점검하고, 약 복용·낙상 위험을 살피며, 병원 동행이나 서류 정리 같은 일상 지원을 제공한다.
▲ 시간·장소의 유연성: 밤이나 주말에도 안부를 확인하고, 날씨가 나쁠 때는 특별 순회를 하며, 약이나 처방전을 대신 받아주는 등 일상에 꼭 필요한 도움을 제때 제공한다.
▲ 연결의 기술: 방문 중 발견한 위험 신호(식사 부족, 욕창, 화재 위험 등)를 기록해 이웃 복지센터, 보건소, 치매안심센터 등과 즉시 공유해 지원이 빠르게 이어지게 한다.
공유 돌봄 계획: 장기요양보험, 지자체 돌봄, 보건소, 병의원이 서로 돌봄 계획을 공유해 중복이나 누락이 없도록 한다.
현장 인력의 안전과 교육: 이동이 많은 돌봄 인력을 위해 안전장비를 지원하고, 충분한 휴식시간과 교육(낙상 예방, 치매 소통법 등)을 제공해 서비스의 질을 높인다.

돌봄의 유연성, 제도 밖 어르신을 살린다

현장에서는 제도 기준에 걸려 돌봄을 받지 못하는 어르신들을 위해, 돌봄 시간과 방식을 더 유연하게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등급이 낮게 나오면 하루에 받을 수 있는 서비스 시간이 줄어 실질적인 생활 지원이 어렵다. 특히 혼자 사는 어르신이나 엘리베이터가 없는 고층, 반지하 주택에 사는 분들은 환경이 조사표에 잘 반영되지 않는다.

치매 초기처럼 걸을 수 있지만 위험을 인식하지 못하는 어르신은 곁에서 함께 봐주고 병원에 동행하는 서비스가 꼭 필요하지만, 지금의 제도는 이런 ‘함께 돌봄’을 충분히 담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등급 기준을 세밀하게 조정하고, 제도 밖 어르신을 위한 단기 지원(사전돌봄·바우처 등)을 마련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장기적으로는 지역 통합돌봄과 연계해 복지·의료·주거 서비스를 끊김 없이 이어가는 체계를 만들려 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예산의 방향이다. 돌봄이 완전히 끊기기 전에 미리 찾아가 예방적으로 돕는 데 투자를 늘리면, 결국 응급실 방문이나 시설 입소 같은 큰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르고 있다.

작은 도움의 연속이 큰 사고를 막는다

이동형 심부름·동행 서비스는 ‘작은 도움의 연속’으로 큰 사고를 예방한다.


약이 떨어져 중단되거나, 병원 예약을 놓쳐 악화되거나, 겨울철 난방 점검이 늦어 저체온으로 응급실에 가는 일을 미리 끊는 것이다.

더 중요한 건 ‘신호를 알아차리는 능력’이다. 냉장고가 비어 있거나, 멍 자국이 늘고, 같은 질문을 반복하거나, 밤에 자주 배회하는 등 작은 변화들이 위험의 신호가 된다.

찾아가는 센터가 이런 신호를 모아 돌봄 계획을 조정하고, 공단·지자체·보건소·치매센터 등과 빠르게 연결할 때 ‘등급 밖’ 어르신도 보호망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이처럼 돌봄의 빈틈은 제도 자체의 한계뿐 아니라 ‘연결되지 않은 구조’에서 생긴다.


필요한 사람을 먼저 찾아가 돕고,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지원하며, 데이터를 통해 위험을 빨리 포착하고, 여러 기관이 함께 이어지는 돌봄 계획을 세울 때 비로소 사각지대는 줄어든다.

‘찾아가는 노인심부름센터’는 이런 일을 직접 실천하는 현장의 손과 발이다. 제도의 문턱을 낮추고, 일상생활과 제도를 자연스럽게 이어줄 때, 지금은 제도 밖에 있는 어르신들도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다.


출처
-국민건강보험공단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안내」, 2024, 「장기요양 인정조사표」, 2024 개정판, 「장기요양 인정결과별 급여시간 기준」, 2024
-보건복지부 「노인장기요양보험법 시행규칙」 제9조~제12조, 「지역통합돌봄 선도사업 평가보고서」, 2024, 「제5차 지역사회통합돌봄 기본계획(2025~2027)」, 「장기요양보험 재정운영위원회 회의록」, 2024, 「통합돌봄 로드맵(2025)」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장기요양 경계군 관리방안 연구」, 2023, 「장기요양 사각지대 실태 및 개선방안」, 2022, 「노인돌봄체계의 통합적 운영방안」, 2023, 「돌봄예방 투자효과 분석」, 2023
-중앙치매센터 「경증치매 지역사회 돌봄 모델 개발 연구」, 2023
-서울특별시 「서울형 통합돌봄 모델 표준안」, 2024
-서울시복지재단 「방문형 돌봄서비스 실태조사」, 2022
-속초시 「찾아가는 노인심부름센터 시범사업 보고서」, 2024
-국회예산정책처 「노인돌봄 관련 예산분석」, 2023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회의록, 2023.11
-감사원 「노인장기요양보험 운영실태」,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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