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여주 이대서울병원 가정의학과, 겨울밤 잠이 오지 않는 이유

  • 김지현 기자
  • 발행 2025-12-19 00:31

▲ 겨울철 숙면은 난방으로 흐트러지기 쉬운 실내 온도·습도·조도 환경을 어떻게 균형 있게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 [사진=셔터스톡]

겨울이 되면 “잠을 자도 잔 것 같지 않다”, “밤에 자주 깬다”고 호소하는 분들이 부쩍 늘어난다.


실제로 겨울철에는 다른 계절보다 수면장애로 병원을 찾는 환자가 많다. 기온이 떨어지면서 난방은 필수가 되지만, 이 난방 환경이 오히려 숙면을 방해하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겨울철 수면의 질을 좌우하는 핵심은 ‘온도, 습도, 조도’라는 세 가지 환경 조건이다. 이 요소들이 균형을 잃으면 몸은 잠들 준비를 하지 못한다.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심부체온이다. 심부체온은 심장, 폐, 간, 신장처럼 몸 깊숙한 곳에 위치한 장기들이 유지하는 체온으로, 깨어 있는 동안에는 높게 유지되다가 잠들기 직전에 자연스럽게 내려간다.


건강한 수면을 위해서는 하루 24시간을 주기로 하는 일중리듬에 따라 저녁 시간대에 심부체온이 약 0.5~1℃ 감소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수면을 유도하는 멜라토닌 분비가 촉진되고, 신체는 안정 상태로 전환된다.


그러나 겨울철 과도한 난방으로 실내 온도가 지나치게 높아지면 말초혈관이 과도하게 확장된 상태가 유지돼 열 방출이 원활하지 않다.


그 결과 심부체온이 충분히 떨어지지 못하고, 잠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밤중에 자주 깨고 깊은 수면 단계가 줄어드는 문제가 나타난다.

겨울철 숙면을 위해 권장되는 실내 온도는 18~22℃다. 이 범위에서 체온 조절이 가장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반대로 실내 온도가 너무 낮으면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교감신경이 활성화돼 수면의 연속성이 깨지고 야간 각성이 잦아질 수 있다. 습도 역시 중요하다.


실내 습도는 40~60%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습도가 40% 이하로 떨어지면 호흡기 점막이 건조해지고 상기도 자극이 심해져 수면 중 각성이 늘어날 수 있다. 반대로 60% 이상이면 곰팡이와 먼지 진드기 증식이 쉬워져 알레르기 반응과 호흡곤란으로 깊은 수면이 방해받을 수 있다.


수면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환경 관리와 함께 생활습관 조절도 필요하다.


취침 1~2시간 전 38~40℃ 정도의 미온수로 목욕이나 족욕을 하면 말초혈관이 확장된다. 이후 비교적 시원한 침실로 이동하면 피부를 통한 열 방출이 촉진되고, 심부체온이 서서히 감소하면서 자연스럽게 잠에 들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이는 기분상의 효과가 아니라 생리적으로 검증된 수면 유도 과정이다.

겨울에는 일조량 감소로 낮 동안의 세로토닌 합성이 줄어들고, 이로 인해 밤 시간 멜라토닌 분비 리듬도 흐트러지기 쉽다. 가능한 낮 시간에는 자연 채광에 충분히 노출되고, 저녁 이후에는 스마트폰이나 TV에서 나오는 강한 청색광 노출을 최소화해야 한다. 침실은 어둡고 조용한 환경을 유지하는 것이 숙면에 도움이 된다.

겨울철 숙면의 핵심은 심부체온이 자연스럽게 떨어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있다. 체온의 항상성이 무너지면 수면 리듬뿐 아니라 몸과 마음의 균형도 함께 깨진다. 적정한 실내 온도와 습도, 빛 관리에 신경 쓰는 것은 단순한 생활 요령이 아니라 전반적인 건강을 지키는 기본이다.


겨울밤 잠이 오지 않는다면 약을 찾기 전에 먼저 침실 환경부터 점검해 보길 권한다. 숙면은 하루의 끝이 아니라, 건강한 하루를 시작하게 하는 중요한 토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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