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오면 심장과 뇌부터 위험해진다 ‘심뇌혈관질환’

기온 하강이 혈압·혈전 형성에 미치는 영향과 겨울철 관리법
  • 구재회 기자
  • 발행 2025-12-30 00:59

▲ 심뇌혈관질환은 심장과 뇌의 혈관이 막히거나 터지면서 발생하는 질환으로, 기온 변화가 큰 겨울철에
특히 발생 위험이 높아 주의가 필요하다. [사진=셔터스톡]

영하의 날씨가 이어지던 어느 겨울 아침, 60대 남성 A 씨는 평소처럼 집 근처를 걷다 갑작스러운 가슴 답답함을 느꼈다.


“잠깐 쉬면 괜찮아지겠지”라고 생각했지만 통증은 점점 심해졌고, 이내 식은땀이 나고 숨이 가빠졌다.


병원으로 옮겨진 A 씨는 심근경색 진단을 받았다. 평소 고혈압 약을 복용하고 있었지만, 추운 날씨가 이렇게 큰 위험으로 이어질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이처럼 심뇌혈관질환은 심장과 뇌의 혈관에 문제가 생겨 발생하는 질환을 말한다.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이 막히거나 좁아지면서 발생하는 심근경색, 협심증 같은 심장질환과, 뇌로 가는 혈관이 막히거나 터지면서 나타나는 뇌졸중이 대표적이다.


갑작스럽게 발생해 생명을 위협할 수 있고, 치료 이후에도 심각한 후유증을 남길 수 있어 예방과 조기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심뇌혈관질환은 우리나라 주요 사망 원인 중 하나로, 특히 기온 변화가 큰 겨울철과 여름철에 발생 위험이 더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자료=소방청]


추위가 혈관을 조이고 심장을 긴장시킨다


겨울철의 심뇌혈관질환은 흔히 ‘조용한 살인자’로 불린다.


눈에 띄는 외상이나 극적인 증상 없이도, 어느 날 갑자기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파가 반복되는 겨울철에는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같은 심뇌혈관질환 발생 위험이 다른 계절보다 크게 높아진다.


손과 발이 꽁꽁 얼 정도의 추위가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추위가 시작되면 우리 몸은 체온을 지키기 위해 자동으로 반응한다.


피부와 말초 혈관이 수축하면서 열 손실을 줄이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혈관이 좁아지고 혈압이 상승하게 된다.


혈액이 흐르는 통로가 좁아지면 심장은 더 큰 힘으로 혈액을 보내야 하고, 그만큼 부담도 커진다.


겨울철에 혈압이 평소보다 높게 측정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겨울철에는 찬 공기로 인해 교감신경이 활성화되면서 말초동맥이 수축하고 심박수가 증가해 심장에 부담이 커진다.


여기에 더해 체온이 낮아지면 혈소판 활동이 활발해지고 혈액 점도가 높아져 혈전, 이른바 피떡이 생기기 쉬운 환경이 만들어진다.


이러한 변화는 심장 혈관을 막아 심근경색을 일으키거나, 뇌혈관을 막거나 터뜨려 뇌졸중으로 이어질 수 있다.


통계로 확인되는 겨울철 심뇌혈관질환 위험

통계적으로도 겨울철 위험성은 뚜렷하다. 심뇌혈관질환으로 인한 사망은 기온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10월부터 증가해 12월부터 이듬해 2월 사이에 가장 많이 발생한다.


기온과 사망률의 관계를 보면, 15~20℃에서 가장 낮고 이 범위를 벗어나 기온이 1℃ 낮아지거나 높아질 때마다 사망률이 증가하는 U자형 곡선을 보인다.


겨울철 심혈관계 질환 사망률이 여름철보다 평균 30% 이상 높다는 분석도 있다.

이러한 위험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나타나지는 않는다.


고혈압, 당뇨병, 이상지질혈증 같은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 과거에 심근경색이나 뇌졸중을 겪은 적이 있는 사람, 그리고 고령자는 특히 취약하다.


혈압과 체온을 조절하는 능력이 떨어져 있어 같은 추위에도 신체 부담이 더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겨울철이 되면 고혈압 환자나 노인들이 외출을 꺼리게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관절 통증과 활동 감소가 만드는 겨울철 악순환

겨울철에는 심뇌혈관질환뿐 아니라 관절염 같은 만성질환도 함께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


기온이 낮아지면 근육과 인대가 굳어지고 혈액순환이 둔해져 관절 통증이 심해진다.


통증 때문에 활동량이 줄어들면 체중 증가, 혈압 상승, 혈당 조절 악화로 이어질 수 있고, 이는 다시 심뇌혈관질환 위험을 높이는 악순환을 만든다.


겨울철 건강 관리는 특정 질환 하나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전신 건강을 함께 살펴야 하는 이유다.


▲[자료=질병관리청]


예방의 핵심은 ‘급격한 변화’를 줄이는 것

그렇다면 겨울철 심뇌혈관질환을 예방하기 위해 무엇을 가장 주의해야 할까. 핵심은 ‘급격한 변화’를 줄이는 것이다.


실내외 온도 차이가 크면 혈관이 갑자기 수축하거나 확장하면서 심장과 뇌에 부담을 준다.


외출 시에는 모자, 목도리, 장갑 등 방한용품을 활용해 체온을 유지하고, 실내에서는 과도한 난방을 피하면서도 몸이 차지 않도록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

운동 역시 완전히 피하기보다 환경에 맞게 조절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파 속 야외 운동이나 무리한 등산은 심장에 부담을 줄 수 있으므로 삼가고, 실내에서 가벼운 스트레칭이나 걷기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식습관도 중요하다. 짜고 기름진 음식은 혈압과 혈중 지질 수치를 높이므로 줄이고, 채소와 통곡물, 생선 중심의 균형 잡힌 식사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질병관리청은 겨울철을 포함해 심뇌혈관질환 예방을 위해 금연, 절주, 규칙적인 운동, 적정 체중 유지, 정기적인 혈압·혈당·콜레스테롤 관리 등 기본적인 생활수칙을 꾸준히 실천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특히 고혈압이나 당뇨병 환자는 약물 복용을 임의로 중단하지 말고, 전문의와 상의하며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조기증상을 알고 신속히 대응하는 것이다.


갑작스러운 가슴 통증이나 압박감, 턱이나 왼쪽 팔로 퍼지는 통증, 숨이 차고 식은땀이 나는 증상은 심근경색의 신호일 수 있다.


한쪽 얼굴이나 팔, 다리에 힘이 빠지거나 말이 어눌해지고, 갑작스러운 어지럼증이나 심한 두통이 나타난다면 뇌졸중을 의심해야 한다.


이러한 증상이 나타나면 지체하지 말고 즉시 119를 통해 병원으로 이동해야 한다.

겨울철 심뇌혈관질환이 ‘조용한 살인자’로 불리는 이유는, 작은 신호를 대수롭지 않게 넘길 때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추위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지만, 몸의 변화를 이해하고 생활 속에서 대비한다면 위험은 충분히 줄일 수 있다.


올겨울, 손발이 시릴 만큼 추운 날일수록 심장과 뇌의 신호에 한 번 더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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