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인 플리마인드 대표, 새해 결심과 ‘마음 근력’의 역설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어김없이 나만의 결심을 만든다.
다이어트, 자격증, 이직,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들....
계획표는 촘촘하고, 기대는 크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기는 희망만큼이나 불안이 커지는 때이기도 하다.
특히 강박 성향이 높은 사람들에게 새해는 ‘새로운 시작’이 아니라 ‘완벽해야 하는 시험지’처럼 느껴진다.
강박이 높은 사람들의 불안은 대개 “잘하고 싶어서” 시작된다.
문제는 그 기준이 지나치게 높다는 것에 있다.
조금만 어긋나도 “왜 이것도 못 하는 거지?”, “이 정도도 안 되는 내가 무슨 자격이 있는 거지?”라는 자기비난이 즉각적으로 따라붙는다.
새해 결심은 어느새 미래를 향한 설렘이 아니라, 실패했을 때 감당해야 할 수치심과 불안을 미리 떠올리게 만드는 장치가 된다.
완벽하게 해내지 못한 순간을 견디지 못하는 마음은, 목표보다 ‘실패한 나’에 집착한다.
그래서 결심을 지키지 못했을 때 좌절은 곧바로 자기혐오로 이어지고, 불안은 더 커진다.
역설적으로, 잘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행동을 멈추게 만드는 셈이다.
마음 근력: 완벽함이 아닌 ‘버티는 힘’
마음 근력은 ‘무너지지 않는 힘’이 아니다.
여기서 우리가 다시 생각해볼 개념이 있다. 바로 ‘마음 근력’이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 근력을 흔들리지 않는 강한 멘탈로 오해하지만, 실제로 마음 근력은 한 번도 무너지지 않는 상태가 아니다.
오히려 무너졌을 때 얼마나 빨리, 최대한 현실적으로 다시 설 수 있는가에 가까운 힘이다.
마음 근력이 있는 사람은 목표를 이루지 못했을 때 나의 전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나는 역시 안 되는 사람이야” 대신, “이번 방식은 나한테 맞지 않았구나”, “조건이 너무 빡빡했네”처럼 상황을 조정한다.
실패를 인격의 문제로 삼지 않고, 전략의 문제로 다룬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매우 크다.
마음 근력이 자라면, 새해 결심을 지키지 못한 좌절이 곧바로 나를 괴롭히는 채찍이 되지 않는다.
“또 실패했어”가 아니라 “이번엔 어디까지 왔지?”, “여기서 배운 건 뭘까?”라는 질문이 생긴다. 그 순간, 나를 몰아붙이던 에너지의 일부가 나를 돌보는 방향으로 이동한다.
강박과 불안이 만드는 악순환
강박 성향이 높은 사람들은 마음속에 엄격한 내부 규칙을 갖고 있다.
‘남들보다 잘해야 한다’, ‘흠잡히면 안 된다’, ‘중간은 실패다’ 같은 내적 규칙을 스스로에게 주입해 놓는다.
이 기준을 조금만 벗어나도 “나는 안 되는 사람”이라는 급격한 자기평가가 뒤따르며, 불안은 커지고, 그 불안은 다시 행동을 위축시킨다.
완벽하게 할 자신이 없으면 시작조차 미루게 되고, 시작하더라도 작은 실수 하나에 모든 시도를 포기해버린다.
결과적으로 성취는 줄어들고, 미루기와 자기비난은 늘어난다.
새해 결심이 반복될수록 “나는 항상 실패한다”는 자기서사만 더 단단해진다.
이 악순환을 끊는 열쇠는 의외로 ‘더 잘하자’가 아니라 ‘덜 때리자’, ‘덜 몰아붙이자’에 있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훈련되는 마음 근력
흥미로운 점은, 이런 회복탄력성 개념이 일상의 심리 문제를 넘어서 극한의 환경에서도 체계적으로 다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군인과 재향군인들을 대상으로 스트레스 상황에서 자신의 생각·감정·신체 반응을 인식하고 조절하는 심리훈련 프로그램과 모바일 앱을 운영해 왔다.
호주 국방군(Australian Defence Force)은 BattleSMART(Self-Management and Resilience Training)라는 심리훈련 프로그램을 통해 스트레스 상황에서 자신의 생각·감정·신체 반응을 인식하고 조절하는 방법을 체계적으로 훈련한다.
또한 ‘High Res(High Resilience)’ 같은 스마트폰 앱은 현역 및 전역 군인과 가족이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회복탄력성을 기를 수 있도록 호흡법, 마음챙김, 상황 재해석 같은 도구를 제공한다.
‘PTSD Coach Australia’ 앱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을 이해하고 관리하도록 돕기 위해 증상 체크, 자기관리 일정 관리, 대처기술 연습 기능 등을 담고 있다.
총성이 울리는 전장에서도 ‘마음 근력’을 훈련하는 별도의 시스템을 구축해 두는 셈이다.
이 프로그램들은 “강해져라”가 아니라, “지금 내 상태를 알아차리고, 망가진 순간에도 회복할 수 있게 하자”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전장처럼 극도의 긴장과 실패가 반복되는 환경에서도, 마음 근력은 타고나는 성격이 아니라 훈련 가능한 능력으로 다뤄진다.
이 점은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마음 근력은 특별한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누구나 일상에서 키울 수 있는 기술이라는 엄청난 사실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일상용 훈련’
마음 근력은 거창한 목표에서 자라지 않는다. 오히려 아주 사소한 태도 변화에서 시작된다.
· 오늘의 목표를 ‘완벽하게 해내기’가 아니라 ‘어제보다 한 걸음 더 가보기’로 설정하기
· 계획의 60~70%만 지켜도 “그래, 이 정도면 잘했다”고 말해주는 자기평가 연습하기
· 실수했을 때 “왜 그랬어?” 대신 “무엇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지?”라고 이유를 묻는 태도 갖기
· 몸이 지쳤을 때는 과감히 쉬는 것을 ‘게으름’이 아니라 회복을 위한 투자로 받아들이기
이런 작은 실천은 새해 결심을 방해하는 존재가 아니라, 결심을 버텨주고 끝까지 가져가게 돕는 ‘마음 근육 운동’이다.
마음 근력이 자라면, 대단한 성취를 하지 못한 해에도 스스로를 망치처럼 내려치기보다 “그래도 여기까지 온 나”를 조용히 인정하게 된다.
어쩌면 새해에 가장 먼저 세워야 할 결심은 이것일지도 모른다.“올해는 나를 덜 때리겠다.”
완벽한 성취보다, 실패해도 다시 시도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 좌절해도 나를 버리지 않는 회복탄력성을 키우겠다는 다짐 말이다.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오늘 하루, 스스로에게 조금 더 관대해지는 선택. 그 사소한 선택이야말로 새해에 가장 오래 가는 결심이 될 수 있다.
호주 군대가 별도의 프로그램과 앱까지 만들어 마음 근력을 관리하듯, 우리에게도 각자의 방식으로 마음 회복 시스템이 필요하다.
거창한 목표가 아니어도 좋다.
오늘 하루, 스스로에게 조금 더 관대해지는 것, 그 사소한 선택이야말로 새해에 가장 오래 가는 결심이 될 수 있다.

[프로필] 정혜인
심리학자 출신의 그는 국내 최초로 온라인 심리지원 전문 기업 '플리마인드'를 설립하며 주목을 받았다. 플리마인드는 정신건강 상태를 스스로 진단하고 모니터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자가 정신건강 관리를 위한 다양한 콘텐츠 제작에 주력하고 있다.
현재 그는 주식회사 플리마인드의 대표를 맡고 있으며, 사단법인 한국심리건강진흥원 이사장으로서 정신건강 증진을 위한 공익 활동에도 힘쓰고 있다. 또한 서울사이버대학교 겸임교수로 활동하며 후학 양성에도 기여하고 있다.
이 외에도 한국IT여성기업인협회 수석부회장으로서 여성 기업인의 성장을 지원하고 있으며, AI윤리협의체 의장으로서 인공지능 시대의 윤리적 가치 정립을 위한 논의에도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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