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후 스트레스 극복하기
이동우 인제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책연구소장
지난 10월 31일 밤, 시청 앞 광장의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 마련된 정신건강 상담 부스의 운영 상황을 살펴 보기 위해 분향소 현장을 찾았습니다.
밤늦은 시간임에도 조문 행렬이 길게 이어지고 있었고, 자신을 목격자라고 밝힌 시민 한 분은 정신건강상담을 신청하여 자원봉사를 나온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와 상담을 하고 있었습니다.
국가 애도 기간은 끝이 났으나 많은 국민들이 오늘도 애도의 과정 속에 있을 것입니다. 또한 사건 현장에 있었던 부상자들과 목격자들, 그리고 SNS로 사건 영상을 목격한 국민들 중에는 사고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외상후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참사의 충격 : 외상후 스트레스와 애도
외상후 스트레스의 증상은 크게 세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재경험으로서, 사건에 대한 악몽이나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사고 장면이 자꾸 떠오르는 것입니다.
둘째로 회피입니다. 사건과 관련된 기억을 회피하는 것, 또 그런 기억을 떠올리는 장소나 유사 상황을 회피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과각성, 과잉 반응성이 있는데 과도하게 긴장되어 있거나 시소한 자극에도 깜짝깜짝 놀라거나 분노 폭발, 자기파괴적 행동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외상후 스트레스와 더불어 애도 반응도 함께 일어나는데 처음에는 충격이 너무 커서 사건 자체를 부인하기도 하고, 이어서 심한 분노를 느끼다가 슬픔, 우울의 감정이 밀려들게 됩니다.
부상자와 유가족들이 참사의 영향을 가장 심각하게 받으실 것이고, 현장에서 목격하신 분들과, 생생한 영상을 목격하신 분들이 그 다음으로 영향을 받습니다. 그 외에도 뉴스나 신문 등으로 사건을 전해들은 분들이 영향을 받습니다.
(사상자들의 대부분이 20대, 또 여성이 많고, 사건이 일어난 장소가 일상적인 공간으로서 젊은 분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보니 청년들이 가장 충격을 받았을 것이고 그 중에서도 젊은 여성들이 더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 우려됩니다.)
참사 충격 극복의 첫 걸음 : 자극 조절과 감정 조절
이러한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먼저 유해한 자극을 차단해야 합니다. 저희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서는 이태원 참사 바로 다음날 성명을 발표하여 국민들께 관련 영상을 반복 시청하지 마시라는 권고를 드린 바 있습니다.
아울러 언론에서도 충격이 될 수 있는 영상에 시청자들을 노출시키지 말아달라는 당부를 드렸는데 방송사에서도 사건 현장을 동영상이 아닌 정지 화면으로, 그것도 모자이크 처리를 한다든가 꼭 필요한 경우에만 보도하면서 적극 호응해 주고 계십니다.
이처럼 유해 자극을 차단한다 하더라도 재경험이라는 외상후 스트레스의 특성으로 인해 사고의 기억이 반복될 수 있습니다. 그럴 경우에 할 일은 공포나 분노, 죄책감과 같은 동반된 부정적 감정을 조절하는 것입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서는 비난과 혐오의 언어를 지양하자고 반복해서 당부드리고 있는데, 이러한 언어들이 부정적 감정의 연쇄를 일으켜 그런 감정들을 증폭시키기 때문입니다.
공포나 분노의 감정을 다스리는데 도움이 되는 몇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심호흡이나 복식호흡도 도움이 되고, 착지법, 그리고 나비 포옹법과 같은 방법도 있습니다.
착지법이란 일어서서 발바닥을 바닥에 붙이고, 발이 땅에 닿아있는 느낌에 집중하신 다음, 발뒤꿈치를 들었다가 ‘쿵’ 내려놓으면서 발뒤꿈치에 지긋이 힘을 주면서 단단한 바닥을 느껴보는 방법입니다.
나비포옹법은 두 팔을 가슴 위에서 교차시킨 상태에서 나비가 날갯짓하듯이 좌우를 번갈아 살짝살짝 10~15번 정도 두드리는 방법입니다.
이런 노력으로도 감정이 조절되지 않고, 그로 인해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의 영향을 받는 분들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를 권합니다. 정신건강과 관련된 문제의 경우 막연한 편견 때문에 치료를 망설이다가 문제를 만성화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치료를 받으시는 것이 좋으며 적어도 첫 한 달이 지나기 전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시길 권해드립니다.
슬픔을 마주하고 애도하기
억제하기만 해서는 안될 감정도 있습니다, 바로 슬픔이라는 감정입니다. 특히 희생자들과 연령적으로 가장 가까운 20대 청년들은 불현듯 밀려오는 슬픔을 많이 경험할 것입니다. 슬픔이 밀려와서 울고 싶을 때는 울어야 합니다. 슬픔을 외면할 것이 아니라 마주하고, 겪어내어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심호흡, 복식호흡, 그리고 착지법과 나비 포옹법이 도움을 줄 것입니다. 혼자서 견디기 힘들 때에는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고 친구나 가족들과 슬픔을 함께 할 필요가 있습니다.
슬픔을 마주하면서 상실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이별한 분들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일련의 과정이 애도의 과정입니다. 가족이나 친지, 친구를 잃은 분들은 애도의 과정이 혼자만의 힘으로는 어려워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서울시와 보건복지부는 유가족과 부상자, 그리고 현장에서의 목격자들을 위한 치료비 지원책을 마련하였습니다.
우리가 같이 해나가야 할 일 : 함께 애도하기, 그리고 연대하기
외상후 스트레스를 어느 정도 극복하고 애도의 과정을 거침으로서 일상을 회복한 분들이 할 일은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주위 분들께 손을 내밀어 주는 것입니다. 주위에 유가족이나 부상자, 현장 목격자가 있다면 그 분들과 함께 해 주십시오. 그 분들이 고통을 호소할 때 묵묵히 들어주시고, 그 분들이 슬피 울 때 말 없이 두 손을 잡아 주십시오.
그 날 현장에 있었던 소방관과 경찰관 여러분들에게도 도움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트라우마 현장에서 구조요원으로 활동한 분들이 트라우마의 고위험군이라는 것은 재난정신의학의 상식입니다.
게다가 이번 재난 현장에 있었던 소방관들과 경찰관들은 어느 때보다도 강한 죄책감에 시달리고 계실 것입니다. 이 분들에게 우리가 다가가야 할 이유입니다.
국가 애도 기간에, 그리고 그 이후에도 애도의 마음을 함께 가져온 우리들이 연대하는 것, 그것이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공감과 연대가 상처받은 분들을 치유하고, 나 자신 또한 치유하며, 우리 공동체 전체가 치유와 회복의 길로 나아가게 합니다.
◆ 이동우 인제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책연구소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 임상의사로서의 진료업무와 함께 우리 사회의 정신건강증진을 위한 정신보건업무, 정신건강정책 개발에도 참여하였으며 많은 사람들의 마음 읽기, 즉 마음 다독(多讀)에 매진해 왔다.
<저작권자 ⓒ 헬스케어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