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 의사들의 고민은 '분만'보다 '분만 소송'

15일 국회박물관에서 열린 '분만 인프라 붕괴와 의료소송의 현실 토론회
출생은 줄어들고 늘어난것은 분만 관련 소송'
  • 정동묵 기자
  • 발행 2023-09-18 15:10


지난 15일 국회박물관에서 국민의힘 최재형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은 ‘분만 인프라 붕괴와 의료 소송의 현실’ 토론회를 개최했다.

대한민국의 분만 인프라는 빠르게 붕괴하고 있다. 이는 저출생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것의 해결로 단순한 수가 인상만으로는 어렵다고 말한다. 그리고 '필수의료 사고처리 특례법'을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필수의료 사고처리 특례법'은 무과실 의료사고 발생 시 의료진에게 형사 책임을 면책하는 내용으로, 산과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필수의료 위기 해결책으로 제시돼왔다.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이 0.78명을 기록했다. 이와 더불어 분만 인프라 역시 붕괴를 겪고 있다. 특히 불가항력적 의료 사고로 인한 소송은 붕괴를 더욱 가속하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최근에 국회에서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통과하긴 했으나,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의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성토가 나왔다.

경북의대 성원준 교수(산부인과)는 산모의 초산 나이가 지난 2012년 30.5세에서 2021년 32.61세로 크게 올랐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조기 진통과 양막 파열, 분만 후 출혈 등의 질환으로 입원하는 임산부도 늘어난 상태다.
성 교수는 “분만은 모성 사망 혹은 신생아의 사망, 뇌성마비 등의 위험이 내재 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가는 낮은 시술”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소송을 당한 의사는 거액의 배상 부담을 겪게 된다. 이렇다 보니 국가를 유지하는 출산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분만 관련 소송의 증가는 의료진 뿐만 아니라 산모 및 향후 출산을 원하는 국민 모두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결국 분만 관련 불가항력적 사고에 관한 국가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법률 전문가도 의료소송에 대한 두려움이 의사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고유강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실제로 의료과오소송에 노출될 위험을 고려해 자연분만 대신 제왕절개 분만을 택한다는 연구 결과가 여럿 존재할 정도”라고 말했다.

대체적 분쟁해결수단(ADR) 중 의료분쟁조정원 조정의 경우 분만사고를 기준으로 2018년 53건, 2019년 38건, 2020년 33건, 2021년 27건, 2022년 23건으로 감소하는 추세지만, 한국소비자원 병·의원서비스 조정 건수는 최근 큰 변동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의료과오소송에서 손해배상액이 도출되는 결정적 요소 세 가지는 △과실·인과관계 △일실이익 △책임제한이다.
이때 환자들이 환영할 만한 대응책은 △감정지연에 대한 실효적 제재수단 도입 △감정인에 비의료인 참여 등이 있으며, 의사들은 △감정료 대폭 증액해 현실화 △복수 감정인이 참여하고, 감정인 후보군을 철저히 관리하는 것 등이 있다.

고 교수는 “최근 의료감정의 적시성, 공정성, 정확성에 대한 많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복수감정제를 도입해 의료감정의 신뢰도를 제고해야 하며, 감정료 증액이 필요하다”며 “분만 과정이 잠재적 분쟁이 아닌 새 생명의 탄생과 산모의 안정에 집중할 수 있게 돼야 한다”고 말했다.

수가 인상만으로는 분만 인프라 개선 어려워, 특례법 필요

계명의대 배진곤 교수(산부인과)는 출산 인프라 재건을 위해 △의료사고 공적보산제도 도입 △산과 관련 수가의 현실화 △산부인과 전공의·산과 전임교수 지원제도 도입 △고위험분만 관련 수가 현실화 △정부·지자체·기관의 분만실 운영 의지 의무화 등을 제시했다.

배 교수는 현 산과 수가제도에 관해 “시간과 인력 소요가 비슷한 타과 수술에 비해 수가가 낮다”며 “정상 질식분만 시 진통 관찰과 대기 수가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포괄수가제에 고위험 및 합병증의 정도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며, 고위험 산모를 경증·중(中)증·중(重)증으로 나눠 각각 다른 포괄수가제를 적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산과 교수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수가 인상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라며, 소아청소년과처럼 정부의 보조금 투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보건복지부 공공의료과 신욱수 과장은 “(산모) 위험도에 따른 모자의료전달체계를 구축하고 있는 단계”라며 “지역별 차등 수가와 고위험 분만 기준을 갖춘 의료기관 보상 강화 등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의료계에서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필수의료 사고처리 특례법은 금방 제정되기 어려워 보인다. 앞서 6일 보건복지부는 법무부와 국회의 반대로 법안 제정이 쉽지 않다는 뜻을 전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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