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마무리 간호조무사에 맡긴 의사 실형

산부인과 전문의 6명 유죄
인력부족과 인프라 문제 수면위로... 정부의 후속조치 따라와야
  • 은현서 기자
  • 발행 2023-01-04 13:45



간호조무사에게 피부봉합을 맡긴 산부인과 의사가 실형을 받았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간호조무사에게 수술 마지막 단계의 피부 봉합을 맡긴 산부인과 전문의 6명이 한꺼번에 유죄를 선고 받았다. 이것으로 절개된 피부 표면을 봉합하는 마무리를 (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에게 맡기는 병원이 많다는 것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이번 사건을 두고 의료현장에서는 "대리 수술이니 처벌해야 한다"며 재발 방지를 강조하며 자율적으로 정화하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수술 인력이 부족한 것인데, 그것은 내버려 둔 채 몇몇 해당 병원만 처벌하는 것이 해결책이 아니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울산지방법원은 간호조무사에게 무면허 의료행위를 지시한 혐의로 기소된 A병원 산부인과 의사 6명과 간호조무사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고 3일 밝혔다. 선고는 작년 12월 23일에 이뤄졌다. 실형을 받은 대표 원장을 비롯하여 의사 2명과 대리 수술을 한 간호조무사는 법정 구속됐다. 그러나 피부 봉합 마무리를 했던 간호사는 기소되지 않았다.
  지난 3년 6개월간 이 간호조무사가 한 피부 봉합만 600회가 넘는다. 의사가 자궁과 복벽, 근막까지 봉합하면 간호조무사가 피하지방과 피부층 봉합 등 마무리 과정을 맡았다. 법원은 "A병원에서 대리 수술이 장기간에 걸쳐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뤄졌고, 죄질이 좋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으로 대한의사협회는 불법 대리 수술이 또 발생했다는 사실에 대해서 깊은 유감을 표하며 이번 사건 관련자를 중앙윤리위원회 징계심의 회부를 검토하고 재발 방지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의협은 지난 2021년 척추전문병원 대리 수술 의혹이 연이어 발생하자 무자격자·무면허자 의료행위에 '무관용 원칙'으로 강력 대응하겠다면서 자율 정화를 강조해왔다.

  보건복지부가 진행하는 PA 타당성 검증 시범사업에서도 봉합과 봉합사를 뽑는 발사(Stitch out), 수술보조는 반드시 의사가 수행해야 하는 업무로 분류됐다. 복지부는 봉합의 경우 법령·유권해석 상 반드시 의사가 수행해야 하는 행위로 위임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리 수술 소식을 접한 의료계 속사정은 복잡하다. 대학병원이 수술에 진료보조인력(PA)으로 간호사를 참여시키는 것처럼 개원가는 간호조무사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해야 할 수술은 많고 인력은 부족한 상황에서 비교적 '간단한' 피부 표면봉합은 진료보조인력에게 맡기고 의사는 다른 수술실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일선 현장은 이들의 보조가 없으면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한 정형외과병원장은 "사람이 부족하다보니 환자 위해가 적은 마무리 단계는 간호사가 많이 한다. 관행적으로 하는 일이다. 이번 사건처럼 마무리까지 의사가 다 해야 한다면 안 걸리는 병원이 거의 없다"라고 했다.
  현직 산부인과병원장은 "병원 수련 때 교수가 봉합은 이렇게 하라고 가르친다. 2년 차가 수술을 하면 1년 차가 마무리하고 의사가 수술을 하면 피부 봉합은 세컨드나 어시스트가 하는 식이다. 개원병원은 이게 간호조무사 까지 간 것"이라고 했다.

  의료현장에서 무면허 의료행위가 관행화된 근본적인 원인을 짚고 정부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단순히 적발된 병원 한두 곳만 처벌하고 그 뒤에 숨겨진 문제인 인력 부족과 인프라 문제를 덮어둬선 안 된다는 것이다.

  대한개원의협의회는 정부가 책임을 방기하고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사이 병원 필요에 따라 PA가 관행화되면서 벌어진 일이라고 지적하며 "제대로 된 후속조치가 따라와야 한다. 의료 인력 문제에 대한 대책은 물론 법적, 제도적으로 명확한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대학병원은 공개적으로 PA 양성화를 거론하고 있는데 개원가는 사법 처리되고 있다. 일벌백계로 다스리는 것도 아니고 의료 현장 상황을 참작해 대책을 내지도 않는다. 이렇게 '걸린 사람'만 죄가 되는 것은 형평성 차원에서도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서, 현재 의료계 상황에서 어려운 문제는 맞지만 지금 당장 '강력 대응'에 나서면 수술 못하는 병원들이 많을 것이며 이번처럼 산부인과병원이 처벌되면 그 지역 인프라가 흔들린다고 말했다. "정부가 제대로 역할했다면 사전에 예방됐을 문제인 것도 사실이다. 지금처럼 정부가 계속 방관하면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이제라도 제대로 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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