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인 플리마인드 대표, 디지털 창 너머의 빈 떡볶이 그릇

  • 강주은 기자
  • 발행 2025-11-03 11:20

▲ 외로움은 디지털에 길들여진 우리에게 ‘사람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신호다. [이미지=셔터스톡]

도움말: 정혜인 심리학자(플리마인드 대표)

SNS의 별그램 피드를 스크롤할 때마다, 우리는 ‘연결’된 척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잠긴다. 마치, 같은 시간대에 누군가와 지금 당장 소통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켜서 또 다른 누군가와 함께 있는듯 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관계의 ‘밀도’보다 ‘표면’만 경험하는 상태가 반복되며, 외로움은 더 정교한 방식으로 심리 속에 침전된다. 현대 사회심리학에서는 이를 가짜 연결(fake connectedness)이라고 부른다. 관계의 수는 늘지만, 정서적 교환과 인정, 상호성의 경험이 결여될 때 외로움은 오히려 강화된다.


1억 명 팔로워 속에서 홀로 웃는 연예인이 있다면 그리고 그 누군가가 외롭다고 말한다면... 어쩌면 이 글을 보는 누군가는 나 지금 팔로워 1억명 있었음 좋겠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정이 넘고 베개에 얼굴 파묻고 나즈막히 속삭일 것이다.

“외로워.”

나의 내담자 특정A도 똑같이 말했다.
“선생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를 읽었어요. 백세희 작가님 말이 제 맘이잖아요. 그 책은 우울증 환자의 솔직한 고백록이어서 정말 공감이 갔어요. 떡볶이 한 젓가락이 마치 생명의 증거처럼 저를 다시 깨웠어요.”

공감은 단순한 감정의 교환이 아니다. 공감이 ‘생체적 회복력’을 촉진한다는 사실은 임상연구에서 반복 확인되어 왔다. 인간의 뇌는 타인의 진실된 공감 표현을 감지할 때 미주신경을 통해 긴장이 완화되고, 자기파괴적 충동이 감소한다. 백세희 작가의 문장이 그에게 ‘정서적 생존 장치’로 작동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지난 10월 16일, 안타깝지만 백작가가 3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뇌사 상태에서 심장, 폐, 간, 신장을 기증해서 5명을 살렸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 기사를 보는 순간 나의 특정A로 인해 오랫동안 걱정이 되었고, 그가 어떻게 되었을까봐 조바심이 났었다.

나의 특정A가 울며 연락이 왔다. “작가님이 돌아가셨어요… 저와 같은 생각을 하며 같은 곳을 바라보셨던 분이…”

오랜 슬픔이 나의 특정A를 다시 가라앉게 만들 것이라 생각하니 디지털 화면에 새겨진 작가의 글이 아무리 영원해도, 메워지지 않는 현실의 빈자리를 어떻게 채울 것인지가 문제였다.

이 장면에서 중요한 것은 “슬픔의 감염”이 아니다. 심리학자 카시오포는 외로움을 ‘사회적 실패감의 신호’라고 정의했다. 즉, 외로움은 우리가 사람을 더 필요로 한다는 ‘경보 시스템’이다. 누군가의 부재를 통해 자기에게 결핍된 관계의 형태를 인지하고, 그 결핍이 현실에서 채워져야 함을 알리는 신호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그 결핍을 다시 디지털에서 메우려 한다는 점이다. 비교와 열등감, 패배감, 재연결의 시도, 그리고 다시 공허함… 이 순환을 심리학에서는 ‘고립-보상 루프(Isolation–Compensation Loop)’라고 설명한다.


디지털 보상은 실제 대인관계에서 필요한 위험감수(거절, 갈등, 이해, 수용)를 대체하지 못한 채, 외로움을 더 깊게 뿌리내리게 만든다.

그래서 심리학자로서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다.
외로움은 제거되어야 할 감정이 아니라, 회복을 향해 우리를 밀어내는 ‘관계적 추진력’이다.그 신호를 디지털에서 지워버리려 하지 말고, 현실에서 응답해야 한다.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고 사람과 마주 앉아 음식을 나누는 행위는 단순한 생활습관이 아니라 ‘정신건강의 구조적 개입’이다. 불완전한 대화, 어색한 침묵, 그리고 때로는 오해까지 포함하는 현존적 만남이야말로 인간을 다시 살아 있게 만든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뜨거운 떡볶이 국물이 끓는 가게에서 옆 사람과 눈을 마주치는 일상적 접촉은 외로움을 서서히 녹여준다. 오늘도 “살아볼까”라는 말이 마음속에서 흘러나오게 해주는, 디지털 창 너머 ‘진짜 연결’은 여전히 우리를 향해 문을 열고 있다.


외로움은 인간적 성장의 신호다.
디지털 속에서만 유영할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상대의 온기와 온몸의 관계를 회복해야 할 시간이다.
책 속 이야기는 영원할지 몰라도, 내 곁의 빈 떡볶이 그릇을 채워줄 수 있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프로필] 정혜인

심리학자 출신의 그는 국내 최초로 온라인 심리지원 전문 기업 '플리마인드'를 설립하며 주목을 받았다. 플리마인드는 정신건강 상태를 스스로 진단하고 모니터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자가 정신건강 관리를 위한 다양한 콘텐츠 제작에 주력하고 있다.

현재 그는 주식회사 플리마인드의 대표를 맡고 있으며, 사단법인 한국심리건강진흥원 이사장으로서 정신건강 증진을 위한 공익 활동에도 힘쓰고 있다. 또한 서울사이버대학교 겸임교수로 활동하며 후학 양성에도 기여하고 있다.

이 외에도 한국IT여성기업인협회 수석부회장으로서 여성 기업인의 성장을 지원하고 있으며, AI윤리협의체 의장으로서 인공지능 시대의 윤리적 가치 정립을 위한 논의에도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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