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서울병원 소화기내과 전호수, 연말 음주…간이 먼저 신호 보낸다

  • 부동희 기자
  • 발행 2025-12-15 14:07

▲ 연말 술자리가 늘수록 피로·황달·소변 색 변화 같은 증상은 간이 보내는 위험 신호일 수 있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연말이 되면 자연스럽게 송년회와 모임이 늘어난다.


술잔을 주고받는 일이 일상이 되지만, 진료실에서는 이 시기마다 반복해서 같은 신호를 마주한다.


“요즘 유난히 피곤하다”, “눈이 노래진 것 같다”, “소변 색이 진해졌다”는 호소다. 단순한 피로로 넘기기 쉽지만, 이런 증상은 간이 보내는 경고일 수 있다.

최근 발표된 지역사회건강조사 결과에서도 확인되듯, 우리 사회의 음주율은 다시 증가 추세다.


특히 한 달에 한 번 이상 술을 마시는 사람이 절반을 넘고, 고위험 음주에 해당하는 비율도 적지 않다.


문제는 음주량이 늘수록 간 손상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진행된다는 점이다.

술은 세계보건기구가 지정한 1군 발암물질이다.


고위험 음주는 단순히 간이 잠시 피로해지는 수준을 넘어 알코올성 지방간, 알코올성 간염, 간경변증, 나아가 간암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식도암이나 후두암, 심뇌혈관질환, 치매, 우울증, 통풍 같은 전신 질환의 위험도 함께 높아진다.

그중에서도 가장 직접적이고 치명적인 영향을 받는 장기는 간이다.


간은 ‘침묵의 장기’라 불릴 만큼 상당히 손상이 진행되기 전까지 뚜렷한 증상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문제가 더 늦게 발견된다.

알코올성 지방간은 과도한 음주로 간세포 안에 지방이 5% 이상 쌓인 상태를 말한다.


이 단계에서는 대부분 특별한 증상을 느끼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괜찮다”고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절주나 금주 없이 음주가 지속되면 간염, 간경변증으로 진행될 수 있다.

상태가 악화되면 피로감이 심해지고, 오른쪽 윗배의 불편감, 식욕 저하, 소화불량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


혈액검사에서 간수치 상승이 확인되거나, 초음파·CT 검사에서 간 내 지방 침착이 발견되면서 진단되는 경우가 많다.

알코올성 간염은 다행히도 금주만 지켜도 4~6주 내 간수치가 정상으로 회복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술을 계속 마시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지방간이나 간염 단계에서 멈추지 않고 간경변증으로 진행되면, 술을 끊어도 이전 상태로 돌아가기는 매우 어렵다.

특히 복수나 황달이 나타났다면 상당히 진행된 간경변증을 의미한다.


이 단계에 이르면 삶의 질은 급격히 떨어지고, 합병증 위험도 크게 증가한다.


증상이 없더라도 폭음이나 만성 음주 습관이 있다면 정기적인 건강검진이 반드시 필요하다.

알코올성 간 질환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금주다.


금주만으로도 대부분의 알코올성 지방간은 회복이 가능하다.


최근에는 비만이나 당뇨병 같은 대사 이상이 함께 있는 환자에서 ‘대사 관련 알코올성 지방간 질환’이 늘고 있다.


이 경우에는 금주뿐 아니라 체중 관리, 혈당 조절, 규칙적인 운동 등 전반적인 생활습관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이미 간경변증으로 진행된 경우에는 약물치료, 영양 관리, 합병증 예방 치료가 필요하며, 말기 간경변증 환자에서는 간이식이 고려되기도 한다.

의학적으로 ‘안전한 음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에 따라 단 한 잔의 술도 간에 무리가 될 수 있다.


다만 부득이하게 술자리를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한 번에 남자는 4잔, 여자는 2잔을 넘기지 않는 것이 그나마 간 부담을 줄이는 방법이다.


또한 하루 음주를 했다면 최소 3일 이상 금주하며 간을 쉬게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새해를 앞두고 금주나 절주를 다짐하고, 이를 주변 사람들에게 미리 알려두는 것도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피로, 황달, 소변 색 변화 등 몸의 신호가 느껴진다면 지체하지 말고 전문의를 찾아 정확한 진단과 조언을 받길 바란다.


간은 한 번 무너지면 되돌리기 어렵다. 연말의 술잔보다, 내년의 건강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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