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에서 내려진 죽음, ‘조력 존엄사’라는 닫힌 문

안락사 시도 60대 출국 저지 사건이 던진 질문,
죽음의 결정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지난 10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안락사를 위해 스위스로 출국하려던 60대 남성 A씨가 비행기 이륙 직전 제지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안락사를 목적으로 출국하려는 것으로 의심되는 60대 남성 A씨를 설득해 집으로 돌려보냈다.

표면적으로는 한 생명을 구한 '구조' 행위였으나,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무거운 질문을 던졌다. 극심한 육체적 고통 속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는 개인을 강제로 삶의 현장으로 돌려보낼 권리는 누구에게 있는가. 국가가 보장해야 할 것은 '생명의 연장'인가, 아니면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인가.

‘안락사’에서 ‘조력 존엄사’로, 언어의 변화와 그 이면

과거, 질병으로 인해 고통받는 당사자가 약물등의 도움을 받아 생을 마감하는 것을 ‘안락사(Euthanasia)’라 불렀다. 그러나 최근 보건의료계와 법조계에서는 ‘조력 존엄사(Assisted Dying)’ 또는 ‘조력 자살’이라는 용어를 혼용하거나 대체하고 있다.

이러한 명칭의 변화는 능동적 주체에 따른 구분을 명확히 하기 위함이다. 의사가 직접 약물을 주입하는 ‘안락사’와 달리, ‘조력 존엄사’는 의료진이 치사량의 약물을 처방하되 마지막 복용(실행)은 환자 스스로 결정하는 방식이다.
이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극대화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자살’이라는 단어가 금기시되는 탓에, 입법 과정에서는 ‘조력 존엄사’라는 완곡한 표현이 선호되기도 한다.

“엄마처럼 살든가, 엄마처럼 죽든가” 고통의 속 선택지

작년 OTT에서 인기있었던 드라마 <은중과 상연>에서, 극의 후반부에 주인공 상연의 조력 존엄사를 다룬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상연은 조력 존엄사를 선택하며 말한다. 암으로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한 어머니를 지켜본 그녀에게 남은 선택지는 “엄마처럼 고통스럽게 살거나, 엄마처럼 고통스럽게 죽는 것”뿐이라고.

이 대사는 조력 존엄사를 희망하는 이들의 핵심 논리를 관통한다.
현재 한국의 보건의료 시스템은 현대 의학으로 해결할 수 없는 ‘죽음보다 더한 고통’에 대해 무력하다.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 중이지만, 이는 장치를 떼어내고 치료를 중단해 자연사로 가게 하는 ‘소극적 중단’일 뿐 고통을 끝내는 ‘적극적 종료’와는 거리가 멀다.
당사자가 고통 속에서 죽기를 바라는 시스템이 과연 윤리적인가에 대한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해외의 실태와 한국의 보수적 현주소

세계적으로 조력 존엄사를 허용하는 국가는 점차 늘고 있다. 스위스, 네덜란드, 벨기에, 캐나다를 비롯해 미국의 여러 주와 호주, 뉴질랜드 등이 이를 법제화했다. 특히 스위스의 경우 외국인에게도 문호를 개방해, 조력존엄사를 원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매년 이곳을 찾는다.

반면, 한국의 조력 존엄사 시행 건수는 사실상 ‘제로(0)’다. 입법 시도가 있었으나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이토록 보수적인 입장을 고수하는 배경에는 복합적인 맥락이 존재한다.

먼저, 유교적 생명윤리와 종교계의 반발이 있다. 생명을 인위적으로 끊는 행위에 대한 강력한 도덕적 저항감이 존재한다.
다음은 사회 안전망의 부재이다. 회복불가능한 말기 환자 가족들의 경제적 어려움이나 간병 부담 때문에 환자가 죽음을 강요받는 ‘현대판 고려장’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의료계의 입장에서는 ‘살리는 자’ 라는 의사 윤리와 상충한다는 점이 제도 도입의 걸림돌로 작용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스위스로 향하는 한국인들과 해외의 실태

한국 사회가 조력 존엄사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을 고수하는 사이, 극심한 고통을 견디다 못한 이들은 이른바 ‘원정 안락사’를 위해 스위스로 향하고 있다.

2024년 말 기준, 스위스의 대표적인 조력 존엄사 지원 단체인 디그니타스 한 곳에만 가입한 한국인은 약 13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하는 수치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만 최소 10명 이상의 한국인이 이미 스위스에서 조력 존엄사를 통해 생을 마감한 것으로 전해진다. 

세계적으로 조력 존엄사를 허용하는 국가는 점차 늘고 있다.

스위스는 1942년부터 이기적인 동기가 없는 한 조력 자살을 처벌하지 않는다. 연간 약 1,500명 이상이 이 제도를 이용한다.

캐나다의 경우 2016년 도입 이후 적용 범위를 확대해 왔으며, 2022년 한 해에만 약 13,000명 이상이 조력 사망(MAID)을 선택했다. 이는 전체 사망자의 약 4%에 육박하는 비중이다.

미국은 오리건주를 시작으로 현재 10개 주와 워싱턴 D.C.에서 이를 허용하고 있다.
그 외에도 네델란드, 벨기에 에서도 조력존엄사의 건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2018년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된 이후 누적 30만 명 이상이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자연사 과정에서 기계적 장치를 떼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조력 존엄사 법안은 2022년 처음 발의된 것을 시작으로 2024년에 또 한 번 두 차례 발의되었으나 둘 다 폐기되었다. 

생명보호인가, 인권침해인가

비행기에서 내리게 된 60대 남성의 사례로 돌아가 보자. 경찰은 ‘자살 예방’이라는 명분으로 그의 이동을 막았다. 그러나 그가 돌아간 ‘집’에 고통을 해결할 대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면, 이는 국가에 의한 또 다른 고문일 수 있다.

조력 존엄사 논의의 핵심은 단순히 죽음을 허용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다. 인간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마무리할 권리를 인정할 것인지, 아니면 국가가 개인의 신체를 끝까지 통제할 것 인지에 대한 ‘권력의 문제’로 바라볼 것인가이다.

‘존엄’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하다

'자살'을 순화하여 '극단적 선택' 이라고 부를 만큼 한국 사회는 그동안 '죽음'을 외면해 왔다. 하지만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며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이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의제가 되었다. 무조건적인 생명 보존이 선(善)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환자가 겪는 고통의 실체를 직시해야 한다.

비행기 이륙을 막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라면, 그 비행기에 오르지 않아도 될 만큼 고통을 관리해 주거나, 혹은 그 비행기를 타지 않고도 존엄하게 눈을 감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 또한 이제는 국가가 해야 할 일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가. 누군가의 참혹한 고통을 '생명 연장'이라는 이름으로 방치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제는 답해야 할 때다.

<저작권자 ⓒ 헬스케어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