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 고령환자·임산부·소아에게 정말 안전해?

끝없는 논란과 팩트체크

▲ 고령환자·임산부·소아에게 한약은 어디까지 안전할까. [사진=오픈AI 생성이미지]

(헬스케어저널=구재회 기자) 한의학의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한약의 안전성 논란은 의료계와 한의계 사이에서 팽팽한 줄다리기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간 기능이 저하된 고령환자, 태아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임산부, 신체 발달이 진행 중인 어린이에 대한 투약은 매번 화두에 오른다.


한쪽에서는 ‘독성 위험이 크다’고 경고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전문가의 처방 아래서는 안전하다’고 맞선다. 그동안 보고된 부작용 사례와 임상연구, 양측의 주장을 종합해 한약 안전성의 현주소를 짚어본다.

◇ 고령환자와 간독성 논란… “안전하다” vs “통계적 착시”

한약 복용 시 가장 빈번하게 제기되는 문제는 간독성이다. 2020년 한국소비자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방진료 분쟁 중 부작용 사례의 절반가량이 한약과 관련됐으며, 이 중 소비자가 간 기능 이상 등 간독성을 호소한 사례가 39.3%로 가장 많았다.


2015년에는 한의원에서 피부염 치료를 받던 환자가 급성 간부전으로 사망한 사건을 두고 치열한 법적 공방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대법원은 “한의사가 처방한 한약 복용의 부작용으로 인해 전격성 간부전이 발병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고, 대한한의사협회는 이를 바탕으로 한약의 간독성 주장은 왜곡됐다고 반박했다.

최근에는 한의계가 67만 명 이상의 대규모 환자군 데이터를 근거로 “한약이 병의원 처방 의약품보다 간 손상 발생 위험이 낮다”는 한국한의학연구원 등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의료계는 해당 논문의 한계를 강하게 지적한다.


과학중심의학연구원 강석하 원장은 “해당 연구는 제약사가 제조해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한약제제’만을 대상으로 했을 뿐, 한의원에서 개별적으로 달여주는 ‘탕약’은 포함되지 않았다”며 “보험용 한약제제에 간독성 약재가 적게 쓰인다는 의미일 뿐, 모든 탕약이 안전하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은 언론플레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고령의 중증 질환자에게 한약을 투여해 안전성을 입증한 임상 증례도 존재한다. 2024년 대한암한의학회지에 발표된 동의대부속한방병원 연구진의 논문에서는 간암으로 간이식을 받은 58세 환자에게 뇌경색 후유증 치료 목적으로 한약을 장기 투여했다. 그 결과 인지기능이 개선됐으며, 간 및 신장 기능에 독성 징후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보고했다.

여태경 오쿨리한방병원장은 이와 관련해 “고령 환자나 암 치료 이후 회복 중인 환자에게 한약을 사용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조건 안전하다’는 전제가 아니라 환자의 간·신장 기능, 복용 중인 약물, 전신 상태를 함께 확인하는 과정”이라며 “특히 항암치료나 수술 이후에는 몸의 대사 기능이 예민해져 있기 때문에 한약 역시 일반 건강식품처럼 임의로 복용해서는 안 되고, 의료진의 평가와 추적 관찰 안에서 처방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결국 규격화된 약재와 전문가의 모니터링이 동반될 때는 안전성을 기대할 수 있지만, 개별 탕약 전반에 대한 대규모 전향적 연구는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 임산부 복용 논란… “과학적 근거 부족” vs “코호트 추적조사로 입증”


임산부의 한약 복용은 의사협회와 한의사협회가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영역이다. 의료계는 임신 중 한약 복용의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며 태아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2019년 대한의사협회지에 게재된 을지의대 예방의학교실 임지선 교수팀의 체계적 문헌고찰 논문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전 세계 574건의 연구를 검토한 결과, 한방 치료가 난임 환자의 자연 임신율 향상에 유의미한 효과를 입증하지 못했다고 결론지었다.


더불어 대한의원협회는 중국 중약전 및 국내 지침 등을 근거로 감초, 황련, 백출, 속단 등의 한약재가 임신 초기 과량 복용 시 생식발생독성이나 자궁수축, 유산을 유발할 수 있다며 위험성을 제기했다.

반면 한의계는 이러한 주장을 ‘얕은 지식으로 인한 폄훼’라며 일축한다. 대한한의사협회는 배란기, 착상기, 임신 중 등 상황에 맞는 적절한 처방이 이뤄지고 있으며, 12년에 걸친 대규모 코호트 연구를 통해 한약을 복용한 여성과 태아의 안전성이 이미 입증되었다고 반박한다.


특히 문제가 되는 한약재들은 한의사가 임산부에게 처방할 때 엄격히 금기하거나 용량을 섬세하게 조절하므로, 자가 복용이 아닌 ‘전문가 처방’의 틀 안에서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여 원장은 “임산부에게 한약을 처방할 때는 일반 성인에게 쓰는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지 않는다”며 “임신 주수, 산모의 기저질환, 유산·조산 위험 요인, 복용 중인 영양제나 약물까지 확인한 뒤 필요한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문제는 한약 자체보다도 인터넷 정보나 주변 경험담만 믿고 임의로 약재를 구입해 복용하는 방식”이라며 “임신 중에는 어떤 약이든 전문가 상담 없이 복용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덧붙였다.

◇ 소아·어린이 복용… “대부분 경미한 유해반응” vs “표본 확대 연구 필요”

소아 성장, 아토피, 야뇨증 등을 치료하기 위해 어린이에게 한약을 투여할 때 보호자들의 불안감은 클 수밖에 없다. 현재까지의 학계 연구들은 한방소아과에서의 한약 투여가 비교적 안전하다는 데 무게를 둔다.

2014년 발표된 ‘한약 복용 후 발생한 유해사례에 대한 연구(소아·청소년을 중심으로)’ 논문에 따르면, 소아를 대상으로 한 한약 부작용 발생률은 약 3.3% 수준으로 나타났다. 유해사례의 대부분은 가벼운 두드러기나 소화불량 등이었고, 복용을 중단하면 대부분 증상이 소실되었다.


연구진은 “양약의 유해반응 연구에서 중증이 1~8% 보고되는 것과 비교해 한약은 경미한 반응 위주라 비교적 안전하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 논문 스스로도 명확한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기존의 한약 부작용 연구들이 표본수가 적기 때문에, 한약이 본질적으로 안전해서 치명적인 사례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대상자 수가 적어 심각한 사례가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인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소아 연령에 따른 유해사례의 임상적 경향성을 객관적으로 검증하기 위해서는 전국적인 유해사례 수집 체계 구축과 대규모 추가 연구가 필수적이라고 학계는 진단한다.

여 원장은 “어린이는 성인보다 체중이 적고 장기 기능이 아직 발달 중이기 때문에, 같은 약재라도 용량과 복용 기간을 훨씬 신중하게 조절해야 한다”며 “소아 한약 처방에서 중요한 것은 성장이나 면역이라는 표현만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실제 아이의 증상과 체질, 식사·수면 상태를 종합적으로 살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맹신도, 무조건적 배척도 경계해야

각계의 주장과 사례들을 종합하면, 한약은 전문가인 한의사의 명확한 진단과 모니터링 하에 투여될 경우 심각한 부작용 위험은 일정 부분 통제 가능한 영역으로 보인다. 보험이 적용되는 규격화된 한약제제의 경우 간독성 위험이 통계적으로 낮다는 점도 확인됐다.

다만 표준화되지 않은 개별 탕약의 특성상 대규모 전향적 임상시험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점은 지속적인 검증 과제로 남는다. 고령의 기저질환자, 임산부, 신체 발달 중인 소아 등 취약계층은 ‘천연물이니 무조건 안전하다’는 맹신을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


간이나 신장 기능 등 개인의 상태를 철저히 고려해 의료진의 처방에 따라 복용해야 하며, 이상 징후가 발생할 경우 즉각 복용을 멈추고 전문가의 진찰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여 원장은 “한약 안전성 논란은 ‘위험하다’와 ‘안전하다’의 이분법으로 볼 문제가 아니다”라며 “핵심은 어떤 환자에게, 어떤 약재를, 어떤 용량으로, 얼마나 오래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전문적 판단”이라고 말했다.


이어 “고령환자, 임산부, 소아처럼 취약성이 큰 대상일수록 더 정밀한 진단과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며 “검증된 의료기관에서 처방받고 복용 중 이상 반응을 즉시 공유하는 것이 안전한 한약 복용의 기본 원칙”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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