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집중조명 23] 어디까지인지 보여줘, 너의 능력 (1)
이미 일상 속에 함께 하는 습관적인 행동으로도 함께 한 치료법
섭생과 위생에 열악한 삶의 이해해서 탄생한 '양생'의 의학
['한의학'은 오래전부터 '사람'고치는 의학이었습니다. 단순히 '현상'에만 집중하여 '병'만 치료하는 것이 아닌, '병'이 생기게 된 원인을 생각하고 생활습관과 환경에 더 집중한 의학입니다.
한의학은 그래서 특별하거나 생소하거나 예스러운 의학이 아닙니다. 매우 현대적인 개념의 '예방의학'에 주력한 의학입니다. 아프고 난 후에 병원에 가는 것은 이미 늦은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예방의학은 더욱이 개개인의 체질에 맞춰 개별처방으로 나타났습니다.
한의학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람들의 곁에서 함께 걸으며 발전해 왔습니다. 그 발전을 인정받아 '한의학'을 영어사전에 검색하면 'Korean medicine' 이라고 표기돼 있습니다.
여기, 더욱 건강한 일상을 지키기 위한 한의사들의 모임이 있습니다. '모든 병의 근본 치료' 라는 뜻의 '모본' 입니다. '모본'에는 같은 뜻을 가진 한의사들이 모여, 자신들의 임상연구를 공유하고, 현대사회의 질병에 대해 연구하고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노력으로 많은 이들이 아프기 전에 쉽고 가깝게 한의원을 찾아 상담을 받고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를 바랍니다.
평균 기대수명이 늘어난 현대 사회에 '모본'은 '한의학'이 더욱 사람들의 삶속으로 밀접하게 들어가 1차 진료기관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 역할이 크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K-medicine의 길이 있다고 믿습니다.
주 2회, 월요일과 목요일 '모본'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어디까지인지 보여줘, 너의 능력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다. 그 어떤 것이라도. 마음속에 아무리 불타는 사랑을 가지고 있더라도 말 하지 않으면 성냥 하나 태울 수 있는 정도의 불꽃도 내지 못하고, 아무리 아름다운 선율이라도 노래하지 않으면 모른다. 본인의 인생이 드라마 한 편으로 만들면 정말 흥미진진해서 눈을 떼지 못할 것이라 생각해도, 시나리오로 써지지 않으면, 그래서 드라마로 만들어지지 않으면 재미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으니 오해는 쌓이게 되고, 오해가 터질 때 쯤에야 말한다. ‘내가 그동안 말을 안했는데...’ 오해가 쌓인 후에 전하는 진심은 이미 한 발 늦었다. 진작에 말하지 그랬냐는 대꾸도 머쓱하긴 마찬가지이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는 타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해서, 특히 자랑하는 것에 대해서 경계해 왔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다른 사람에게 말 하는 것은 선비가 갖춰야 할 미덕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부족하다고, 내가 가진 것은 별 것 없다고 말하며 한 발 물러나 있는 것. 이것이 오래도록 칭송받아 마땅한 장점이었다.
칭송받아 마땅한 미덕을 갖추는데 있어서 빠지지 않는게 한의학 분야인데, 그간 한의학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수 없이 많은 장점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않았다. 명치가 아프다고 하면 누군가 알아서 등을 두드리고, 탈이 나면 알아서 손바닥이나 손가락 사이를 지압하고, 머리가 아프면 관자놀이나 뒷목을 꾹꾹 누르는 등의 한의학적 해소법들을 스스로 하는 민족 아니던가. 이것은 누구에게 배운 것이 아니다. 내 어머니가 그렇게 했고, 내 할머니가 그렇게 했고, 그런 행동으로 아픈 곳이 괜찮아 지는 것을 경험하면서 자연스럽게 나도 따라하게 된 치료법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들 알고 있는 이러한 치료법은 한의학을 근간으로 하고 있어, 한의학에서는 굳이 자신들의 좋은 점을 이야기 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함께 하고 있었으므로.
건강한 삶에 대한 지대한 관심
이미 있었던 한의학이 살짝 뒤로 물러나게 된 것은 서양의학이 이 땅에 들어오면서 부터였다. 아픈 사람을 치료한다는 것은 같지만, 서양의학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은 어떤 기적을 마주하는 듯한 놀라움으로 가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픈 사람의 속을 열어 병의 원인이 되는 부분을 제거하고 열었던 속을 닫아 수술을 마친 사람이 회복하여 다시 멀쩡해 지는 것은 이전에는 없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이에 사람들은 매우 빠르게 서양의학에 신뢰를 보냈다. 그리고 그것은 가벼운 감기에도 한의원보다 먼저 찾는 이유가 되었다.
코로나19는 3년 동안 사람들의 삶의 리듬을 이전과는 다르게 바꾸어 놓았다. 여러가지 것들이 바뀌었지만, 가장 크게 두드러지게 바뀐 것은 ‘위생’ 부분 이었다. 오죽하면 ‘드디어 인류가 손이라는 것을 씻기 시작했다.’ 라는 이야기가 나오기 까지 했을까. 인류는 오랫동안 병균에 의해 목숨을 많이 잃었다. 그러나 사람의 목숨을 빼앗은 병균은 대체로 비위생적인 생활로 인해 생겨난 것이었다. 살아가는 주변 환경을 깨끗이 하고, 손만 씻으면 걸리지 않을 병들이 제법 많았다. 하지만 사람들의 삶은 열악해서 손을 씻는 기본적인 위생관리 조차 쉽지 않았다. 그런 인류에게 구세주처럼 나타난 것은 비누와 항생제였다. 비누로 손을 씻으면서 사람들은 병에 걸리지 않게 되었고, 항생제가 나타나면서 병을 이겨낼 수 있게 되었다. 비누와 항생제는 사람들의 수명을 늘린 일등공신이면서 서양의학과 함께 발전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한의학이 사람들의 삶이 위생과 섭생에 열악하다는 것을 모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을 알고 태동한 것이 한의학이다. 동의보감의 탄생만 해도 그렇다. 한의사를 부르는 것, 약을 쓰는 것은 왕실이나 양반들에게만 가능한 일이었다. 비교적 위생과 섭생이 양호한 곳에서도 사람들은 병에 걸렸고 목숨을 잃었다. 그러니 일반 서민들의 삶이야 말 해 무엇 하겠는가. 동의보감은 여기에서 시작했다. 일반 서민들이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삶을 더 건강하게 지켜나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서민들이 쉽게 자신의 삶에 응용할 수 있는 방법까지 쓰여있다. 아프고 난 후에 손을 쓰기에는 늦었다는 것, 속을 열어 그것을 해결할 수 없다는 한의학이 가진 한계를 알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병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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