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이과학회 ‘귀 건강 포럼’… 난청관리법·노인 보청기 급여 확대 촉구

  • 구재회 기자
  • 발행 2025-09-10 01:20

▲ 대한이과학회가 제59회 귀의 날을 맞아 난청의 조기 개입과 평생 관리, 제도 개선을 논의하는 ‘대국민 귀 건강 포럼’을 개최했다. [사진=구재회 기자]

대한이과학회(회장 박시내)는 제59회 ‘귀의 날’을 맞아 9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 19층에서 ‘대국민 귀 건강 포럼’을 열고 난청의 조기 개입–평생 관리–제도 개선 과제를 제시했다.


포럼은 청각 재활·보청기, 소음성·돌발성 난청, 청소년 예방 교육, 민간 지원 사례까지 폭넓게 다뤘다. 사회는 최병윤 대한이과학회 공보이사가 맡았다.


▲ 박시내 대한이과학회 회장(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 최병윤 대한이과학회 공보이사(분당서울대학교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 “조기 보청기–재활, 언어·학습·인지 지킨다”


▲ 박무균 서울대학교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1부 ‘청각 재활과 보청기의 현재와 미래’(좌장 최재영 연세대)에서 박무균 서울대학교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보청기 조기 착용의 임상적 근거를 제시했다.


그는 “정상 청력은 20dB HL 미만, 보청기 착용이 필요한 시점은 40dB HL 이상, 청각장애 판정 기준은 60dB HL 이상”이라고 설명하며 “경도 난청 단계에서도 보청기 사용은 청각적·인지적 이득을 제공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치료가 늦어질수록 청각피질의 가소성이 떨어져 예후가 불리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조기 난청이 흔히 저평가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주관적으로 난청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실제로는 난청이 진행되며, 소음 환경에서 청력 저하가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러 연구에 따르면 경도 난청 환자도 보청기 착용을 통해 다양한 청각적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결과가 반복 확인됐다.

특히 경도 난청에서의 보청기 사용이 인지 기능 저하를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노인성 난청은 인지기능 저하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으며, 고령층에게 조기 검진 기회를 제공해 청각 재활을 시작하는 것이 곧 치매 예방의 길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보청기와 치매 예방은 상호 보완적인 관계”라며 “보청기를 사용하면 치매 예방 효과가 있고, 인지 기능이 좋은 사람일수록 보청기 사용을 꾸준히 이어간다”고 말했다.

“AI 보청기·맞춤 피팅… 청력은 ‘관리 가능한 건강영역’”


▲ 이현진 가톨릭대 이비인후과 교수(인천성모병원)

이현진 가톨릭대 교수는 AI 보청기–맞춤 피팅–건강 모니터링으로 대표되는 기술 융합 흐름을 소개했다.


AI 보청기는 주변 소음 환경을 감지해 대화 음성을 선택·강조하고, 사용자의 청취 습관을 학습한다. 스마트폰과 연동돼 음량·환경 설정·통화·음악 제어가 가능하며, 충전식 초소형 제품으로 착용감과 이동성이 개선됐다.


또한 실이측정(REM) 기반 맞춤 피팅을 통해 더 선명한 말소리와 청취 피로 감소를 돕고, 전문가가 원격으로 세팅을 조정하는 원격 피팅, 음성 명령·스마트 어시스턴트 연동 등 디지털 관리 기능도 확장되고 있다.


“이제 보청기는 단순 증폭기를 넘어 지속 관리가 가능한 헬스 디바이스로 진화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 “난청–자살생각 연관성, 공중보건 관점에서 접근해야”


▲ 이동희 가톨릭대학교 이비인후과 교수(의정부성모병원)


이동희 가톨릭대 교수는 발표 서두에서 건강 개념의 변화를 먼저 짚었다. 그는 “과거에는 단순히 신체적 질병이 없는 상태를 건강이라 여겼지만, 이제는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균형 잡힌 삶이 건강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미국 국민건강연합·NSDUH 분석, 국내 40대 이상 중등도 난청군과 19세 이상 자각적 난청 호소군, 프랑스 65세 이상 코호트 연구 결과를 제시하며 “난청은 자살생각과 통계적으로 유의한 관련이 있으며, 난청이 심할수록 위험이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신생아부터 노년까지 이어지는 생애주기형 청각 돌봄을 국가 건강계획에 통합해야 한다”며 난청관리법 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난청은 단순한 의사소통 장애가 아니라 정신건강과 사회참여 전반과 직결되는 공중보건 과제라는 것이다.

아울러 “우리나라 고유의 난청 관리 제도가 필요하다”며 임상적 평가, 조기 진단·치료, 청각 및 의사소통 재활, 가용 자원 활용을 아우르는 체계 구축을 제안했다. 그는 “보청기 판매량을 늘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환자가 환자답게 적정한 치료와 재활을 받을 수 있는 의료 시스템을 확립하고, 동시에 보험 재정을 지속가능하고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 “노인성 난청, 뇌 건강과 직결… 205만 명 치료·재활 필요”


▲ 문일준 대한이과학회 총무이사(삼성서울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문일준 삼성서울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듣기는 단순히 귀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뇌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완성된다”면서 “조기 진단 후 보청기·인공와우 등 적정한 치료가 인지 기능 유지와 치매 예방에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 사회가 초고령사회에 접어들면서 노인성 난청이 급격히 늘고 있다”며 “국내 65세 이상 인구에서 양측 중등도 이상 난청 비율이 약 20.5%, 즉 보청기 또는 인공와우가 필요한 인구가 약 205만 명에 달한다”고 현황을 짚었다.

문 교수는 보청기 사용과 치매 발병률 간의 상관성을 강조했다. 미국 Framingham Heart Study(FHS) 코호트 분석에 따르면, 60세 이상 치매가 없는 참여자 2953명을 20년간 추적 관찰한 결과, 70세 미만 보청기 사용군은 미사용군보다 치매 위험이 61% 낮았다. 이는 보청기 착용이 단순히 청력 보조를 넘어 치매 예방 효과와도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그는 인공와우 수술 환자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타났다고 소개했다. 인공와우 수술 환자 69명을 대상으로 수술 전 인지 기능을 평가했을 때, 31명(45%)이 경도 인지장애를 보였다. 그러나 수술 후 이들 중 단 2명만이 치매로 진행됐고, 약 1/3은 인지 기능이 정상화되는 변화를 보였다.

그는 “난청이 심해질수록 대화 회피와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져 인지 저하를 가속화할 수 있다”면서, “따라서 시기 적절한 재활과 청각 보조기기 사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산업현장 소음성 난청 여전히 증가… 현장형 대책 시급”


▲ 이지호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2부 ‘소음성·돌발성 난청’(좌장 채성원 고려대)에서 이지호 울산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제조·건설 일부 직무와 광업 등에서 유해 소음 노출이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발표에 따르면 업종별 작업장 소음은 dBA 기준으로 제조업 84.1, 건설업 79.8, 광업 82.0, 운수업 78.5, 서비스업 75.2로 파악됐다. 소음노출기준초과 1만4746건 중 90~94dBA가 72.2%로 가장 많았고, 100dBA 초과도 7.4%에 달했다.


그는 “소음성 난청 근로자는 의사소통 장애·경고음 미인지·장비 모니터링 한계 등으로 안전사고 위험이 높다”며 소규모 사업장 관리 강화, 현장형 청력보존프로그램 확대, 스마트 청력보호구 보급, 합리적 보상체계 구축을 제안했다.

◇ “돌발성 난청, 치료 타이밍이 예후 좌우”


▲ 정진세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이비인후과학교실 교수

정진세 연세대 교수는 돌발성 난청을 72시간 이내 급작 발생하는 감각신경성 난청(연속 3개 이상 주파수에서 30dB 이상 손실)으로 정의하고, 경구 스테로이드·고막 내 주사가 표준치료라고 설명했다.


그는 “치료 시작이 빠를수록 예후가 좋다”면서 통상 2주 이내 치료 개시를 권고했다.

◇ “청소년·청년, 생활 소음 문해력부터”


▲ 장지원 고려대학교 이비인후과 교수

장지원 고려대 교수는 WHO 추정을 인용해 “전 세계적으로 10억 명 이상 청년층이 안전하지 않은 청취 습관으로 난청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지적했다. 중·고소득국 청년의 약 25%는 개인 청취기기, 50%는 유흥시설 소음에 과도하게 노출되며, 국내에서는 PC방·게임·군 복무 소음도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그는 “15~30dB의 경미한 청력 역치 상승만으로도 어음 인지력과 학습능력이 저하될 수 있다”며, 학교 기반 청각 선별검사 도입과 예방 교육·홍보의 제도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비디오게임과 청력 손상 위험에 대해서도 경고했다. 전 세계적으로 청소년의 게임 참여율은 20~68%에 달하며, 국내 연구에서는 PC방 이용률이 약 60%로 나타났다. 남성이 여성보다 더 자주, 더 오래, 더 큰 소리로 게임을 즐기는 경향도 확인됐다.


일부 연구에서는 게임센터 이용 학생에게서 고주파수 청력 손실과 이명 위험 증가가 보고됐고, 대규모 관찰 연구에서도 게임 이용이 난청·이명 자기보고율 상승과 관련이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미국에서는 천만 명 이상이 비디오게임으로 인해 ‘큰’ 혹은 ‘매우 큰’ 소음에 노출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장 교수는 “자주·장시간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는 안전 노출 기준을 초과할 가능성이 높아, 영구적 청력 손실이나 이명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공중보건 차원에서 예방 교육과 안전한 청취 습관 홍보, 나아가 글로벌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 “민간–의료–교육 협력으로 재활 사각지대 줄인다”


▲ 곽혜림 사랑의 달팽이 복지사업팀장

3부에서는 곽혜림 사랑의달팽이 복지사업팀장이 보청기·인공와우 지원–언어재활 연계 등 민간–의료–교육 협력 사례를 소개했다.


현장에서는 장기 추적관리, 지역 기반 돌봄 연계, 정보 접근성 제고 등 재활 연속성의 중요성이 강조됐다. 이어 종합토론과 언론 질의응답, 언론인상 시상식이 진행됐다.

학회는 ▲난청관리법을 통해 생애주기형 청각 돌봄을 국가 건강계획에 편입하고 직역 간 협력체계를 제도화할 것 ▲단순 보급보다 보험·급여의 지속가능성을 높여 ‘올바른 진단–적정 치료–지속 재활’을 보장할 것 ▲초고령사회에 맞춰 노인 보청기 급여를 즉시 확대할 것을 제언했다. “노인 보청기 지원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출발점”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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