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식 돈가스와 일본식 돈카츠, 같은 듯 다른 두 세계
이름부터 레시피, 조리 방식, 문화까지 ‘두 나라의 돈가스 이야기’

돈가스를 한 번도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국식 돈가스와 일본식 돈카츠의 차이를 정확히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접시 하나에 올라오는 튀긴 돼지고기라는 점은 같지만, 두 음식은 역사적 배경부터 식문화, 조리 기술, 맛의 방향성까지 완전히 다른 길을 걸어왔다.
흥미로운 건, 우리가 흔히 부르는 ‘돈가스’라는 이름조차 일본의 ‘톤카츠(豚カツ)’에서 온 말이라는 사실이다. ‘돼지(豚)’와 ‘커틀릿(カツレツ)’이 합쳐진 ‘돈카츠’가 한국에서 변형된 것이 ‘돈가스’다.
정확한 일본 발음은 ‘돈카츠’에 가까운데도 한국에서는 '돈까스', '돈가스'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심지어 1995년 문화체육부는 이를 ‘돼지고기 너비 튀김’으로 순화하자고 권장했지만, 이미 굳어진 명칭을 바꾸기란 쉽지 않았다.
이처럼 이름부터 서로 다른 국적과 의미를 품고 있는 두 음식은, 시간이 지나며 각자의 방식으로 더욱 뚜렷하게 갈라져 오늘날의 '한국식 돈가스'와 '일본식 돈카츠'라는 두 세계를 만들었다.
◇일본에서 시작해 한국에서 꽃피다
돈카츠는 원래 서양식 커틀릿을 일본이 자체적으로 해석한 요리에서 출발했다.
1872년, 일본 작가 가나가키 로분의 《서양요리통》에 ‘홀 커틀릿’이 등장한 이후 일본에서는 서양식 튀김 고기를 점차 일본화했다. 그 결과물이 지금의 돈카츠다.
그런데 재미있는 역사가 하나 있다. 한국에서 흔히 먹는 경양식 스타일의 넓적하고 얇은 돈가스는 메이지~다이쇼 시절 일본의 초기 돈카츠 모습과 거의 흡사하다.
한국은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이 음식을 받아들였고, 이후 학교 앞 경양식집과 기사식당을 중심으로 ‘푸짐하고 넓고, 바삭한 고기’라는 한국식 정서가 덧입혀지며 고유의 형태로 자리 잡았다.
다시 말해, 한국식 돈가스는 일본식 돈카츠의 ‘조상님’에 가까운 모습이다.
반면 일본의 현대식 돈카츠는 점점 더 두꺼워지고, 육즙을 살리는 방향으로 진화해 오늘날 우리가 아는 바삭·촉촉한 두꺼운 돈카츠 스타일이 완성되었다.

두 나라 스타일의 첫 번째 갈림길은 ‘고기 두께’에서 시작된다.
한국식 돈가스는 고기를 넓게 펼쳐낸다. 고기를 망치나 칼등으로 두드려 접시를 가득 채울 만큼 넓고 얇게 만든 뒤, 그 위에 튼튼한 튀김옷을 입히는 방식이다.
넓은 면적만큼 기름을 충분히 머금기 때문에 한 입 베어 물면 ‘바삭함’이 크게 터지는 대신 육즙은 거의 남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대신 양이 많고 포만감이 크며, 식사 한 끼의 존재감이 확실한 음식으로 자리했다.
일본식 돈카츠는 반대로 고기 자체의 품질과 풍미를 중심에 둔다. 2~3cm 두께로 등심이나 안심을 도톰하게 썰어 튀기기 때문에 육즙이 살아 있고 고기 본연의 맛이 직관적으로 느껴진다.
겉은 바삭하지만 속은 촉촉한 ‘이중 구조’가 바로 일본식 돈카츠 특유의 정교함이다.
◇소스를 뿌리며 먹는 한국, 찍어 먹는 일본
두 음식의 인상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는 소스다.
한국식 돈가스의 소스는 데미글라스 계열에 가깝다. 버터와 밀가루를 볶아 만든 루에 케첩, 간장, 설탕, 양파나 과일을 갈아 풍미를 더한다. 완성된 소스를 돈가스 위에 듬뿍 ‘부어주는’ 방식이 특징으로, 달콤한 맛과 묵직한 농도가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는다.
반면 일본식 돈카츠는 우스터소스를 기반으로 한 가벼우면서도 깊은 감칠맛의 소스를 만든다. 돈카츠 위에 뿌리지 않고, 작은 그릇에 담긴 소스에 ‘찍어 먹는’ 방식이 일본식 스타일이다.
소스 사용 방식만 봐도 두 음식의 철학이 완전히 다르다. 한국은 ‘맛을 입힌 요리’, 일본은 ‘고기 맛을 살리는 요리’에 더 가깝다.

◇튀김옷과 온도, 기술의 방향성까지 다르다
튀김 기술에서도 두 나라의 방식은 극명하게 갈린다.
한국식 돈가스는 고운 빵가루를 사용해 전체적으로 균일하고 부드럽게 바삭한 식감을 만든다. 고기가 얇기 때문에 높은 온도에서 짧은 시간에 튀겨내 ‘바삭함’이 가장 먼저 느껴진다.
일본식 돈카츠는 굵은 생빵가루를 사용해 표면에 공기층을 만들고, 낮은 온도에서 서서히 튀긴 뒤 온도를 올려 마무리하는 방식으로 조리한다. 이 과정을 통해 고기 내부의 촉촉함을 지키면서 겉은 바삭하게 완성된다.
뜨거운 기름에 ‘풍덩’ 넣는 한국식과 달리, 일본식 돈카츠는 나무젓가락으로 고기를 살살 집어 기름에 넣는 세밀한 방식이 인상적이다.
◇곁들임 음식도 서로 다른 문화
한국식 돈가스는 양배추 샐러드와 단무지, 피클, 그리고 필수처럼 따라오는 크림수프가 특징이다. 이 크림수프가 옛 경양식의 향수를 자극하는 상징 같은 존재다.
반면 일본식 돈카츠는 밥, 미소시루(된장국), 잘게 썬 양배추, 그리고 절임류가 기본 구성이며, 깔끔하고 담백한 정식 형태를 갖춘다.
한국이 ‘푸짐함’을 강조한다면 일본은 ‘단정함’을 강조한다.
◇“바삭하게 vs 촉촉하게” 냉동·생돈까스 차이까지
요즘은 한국식/일본식 구분뿐 아니라 냉동 돈까스 vs 생돈까스의 차이를 묻는 사람이 늘고 있다.
냉동 돈까스는 내부가 차갑기 때문에 천천히 170℃ 전후에서 5~6분 익혀야 한다.
재빠르게 튀기면 겉만 타고 속은 덜 익는다. 한 번 건져 식힌 뒤 재튀김하면 바삭함이 더 살아난다. 국물 요리와의 궁합도 좋아 카레돈까스나 덮밥에 잘 어울린다.
반대로 생돈까스는 고기의 풍미와 육즙이 살아 있어 180~185℃ 정도의 조금 더 높은 온도에서 짧게 튀겨내는 것이 좋다.
익힌 뒤 바로 자르지 않고 1분 정도 휴지(resting) 시간을 주면 육즙이 다시 내부로 스며들어 훨씬 좋은 식감이 나온다.
같은 기계, 같은 빵가루를 써도 식감이 달라지는 이유가 바로 이 온도 관리의 차이다.
◇두 음식의 트렌드도 서로 다른 길을 걷는다
한국식 돈가스는 치즈돈가스, 고구마돈가스, 매운 돈가스, 왕돈가스 등 진화의 폭이 크다. 푸짐한 양과 다양성, ‘조금 과한 맛’이 한국식 돈가스의 매력이다.
일본식 돈카츠는 반대로 정교함과 프리미엄화를 선택했다. 히말라야 소금, 와사비, 유즈코쇼, 트러플 소금 등 다양한 조미료와 함께 제공되며, 저온 조리나 숯불 풍미를 더한 고급 돈카츠도 계속 등장하고 있다.
◇영양학적 관점에서도 다른 두 요리
한국식 돈가스는 넓은 면적만큼 기름 흡수가 많고, 소스가 고칼로리여서 한 접시에 1,000kcal을 넘기기 쉽다.
반면 일본식 돈카츠는 조리 온도 조절로 기름기를 줄이고, 소스를 찍어 먹기 때문에 칼로리 조절이 용이하다. 담백한 맛이 여성 소비자와 장년층에게 특히 잘 맞는 이유기도 하다.
◇결론: 어느 쪽이 더 맛있냐고 묻는다면?
답은 하나다. 둘 다 매력적이지만 완전히 다른 요리다.
한국식 돈가스는 배고플 때 찾는 푸짐한 친구 같고, 일본식 돈카츠는 고급스러운 한 끼를 대접받는 느낌에 가깝다.
어떤 날엔 달콤한 데미글라스와 바삭함이 당길 수 있고, 또 어떤 날엔 두툼한 고기 육즙이 주는 정직한 맛이 간절할 수도 있다.
다음 번 돈가스나 돈카츠를 고를 때, 그저 익숙한 메뉴를 선택하기보다 이 두 음식이 걸어온 문화적·기술적 배경을 떠올리며 선택해보는 건 어떨까? 아마 같은 음식이라도 전혀 다른 깊이로 다가올 것이다.
<저작권자 ⓒ 헬스케어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