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속 깊은 곳의 장기, 췌장암을 다시 보다
음주 횟수와 1회 음주량 모두 위험 요인…생활습관 관리가 생존 전략

최근 20~30대의 잦은 과음과 폭음이 췌장암 발생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국내 대규모 연구 결과가 국제학술지에 발표됐다.
삼성서울병원, 고려대안산병원, 숭실대학교 공동 연구팀은 2009~2012년 국가건강검진을 받은 20~39세 성인 626만여 명을 최대 12년간 추적 관찰해 음주 습관과 젊은 연령층 췌장암 발생 위험의 관련성을 분석했다.
연구 결과는 미국임상종양학회(ASCO) 공식 학술지인 Journal of Clinical Oncology 최신호에 게재됐다.
연구에 따르면 남성 하루 30g 이상, 여성 16g 이상 음주군은 비음주자 대비 췌장암 위험이 평균 19% 높았다. 주 3회 이상 음주할 경우 위험은 23% 상승했다.
특히 한 번에 14잔 이상 마시는 폭음군은 위험이 20%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총 음주량뿐 아니라 ‘음주 횟수’와 ‘1회 음주량’ 모두가 위험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확인된 것이다.
이번 연구는 특히 20~30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췌장암은 전통적으로 고령층 암으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 전 세계적으로 비교적 젊은 연령층에서 발생이 증가하는 경향이 보고되고 있다.
음주 습관이 장기적으로 암 발생 위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조기 생활습관 관리의 중요성이 다시 강조되고 있다.
◇ 조기 발견 어려운 암…왜 치명적인가
췌장암은 왜 더 치명적일까.
한국간담췌외과학회에 따르면 췌장은 위 뒤쪽 깊은 후복막 공간에 위치해 초기 증상이 거의 없고, 조기 발견이 매우 어렵다. 통증이 나타나더라도 단순 소화불량이나 위장 질환으로 오인되는 경우가 많다.
혈액 종양표지자 CA19-9 역시 조기 선별검사로는 권장되지 않는다. 수치가 정상이어도 암이 존재할 수 있고, 반대로 염증성 질환에서도 상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진단 시 이미 국소 진행 또는 원격 전이 상태인 경우가 적지 않다. 수술이 가능한 환자는 전체의 15~20%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대학교 암연구소 역시 췌장암 치료의 가장 큰 한계로 ‘조기 발견의 어려움’을 꼽는다.
췌장은 간, 십이지장, 주요 혈관과 밀접하게 붙어 있어 종양이 작더라도 혈관을 침범하면 절제가 어렵다. 완치를 기대할 수 있는 치료는 절제 수술뿐이며, 항암화학요법과 방사선치료는 보조적 또는 병합 치료로 시행된다.
최근에는 FOLFIRINOX 등 병합 항암요법이 도입되면서 일부 환자에서 생존율이 개선되고 있으나, 여전히 다른 암에 비해 예후가 좋지 않은 암으로 분류된다.

연구팀은 알코올 대사 과정에서 생성되는 아세트알데하이드와 활성산소, 지방산에틸에스터 등이 DNA 손상과 만성 염증을 유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세트알데하이드는 세계보건기구(WHO)가 1군 발암물질로 분류한 물질이다.
반복적인 음주는 급성 췌장염을 유발하고, 염증이 만성화되면 췌장 조직이 섬유화되면서 유전자 손상이 축적된다.
이 과정이 장기간 지속될 경우 암으로 진행할 위험이 높아진다. 실제로 만성 췌장염 환자는 일반인보다 췌장암 발생 위험이 높다는 보고가 있다.
췌장염의 주요 원인은 담석과 알코올이며, 고중성지방혈증과 고칼슘혈증, 일부 약물과 외상 등도 위험 인자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흡연, 비만, 당뇨병, 가족력, 특정 유전자 변이(K-Ras 변이 등)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 췌장암 증상과 예방…생활습관이 바꿀 수 있다
임상 현장에서도 조기 경고 신호에 대한 주의가 강조된다.
우상명 소화기내과 전문의는 “췌장은 몸속 깊은 곳에 있어 초기 증상이 거의 없고 혈액검사로도 조기 발견이 어렵다”며 “소화불량이 한 달 이상 지속되거나, 가족력 없이 당뇨가 새로 진단된 경우에는 CT나 MRI, 초음파 내시경검사를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대표 증상은 명치 통증이 등으로 퍼지는 양상, 원인 없는 체중 감소, 황달, 소화장애 등이다.
특히 췌장 두부에 암이 생기면 담관이 막혀 피부와 눈이 노랗게 변하고 소변 색이 짙어질 수 있다. 체부·미부 암은 황달이 늦게 나타나 발견이 더 늦어지는 경우도 많다.
현재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효과적인 선별검사는 확립되지 않았다. 다만 췌장암 가족력이 있거나 만성 췌장염, 장기 흡연력, 고위험 유전자 변이가 있는 경우에는 전문의와 상담 후 정기적인 영상검사를 고려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확립된 단일 예방 수칙은 없지만, 위험 요인을 줄이는 것이 최선이라고 강조한다.
금연은 가장 중요한 예방 전략이며, 적정 체중 유지와 고지방·고열량 식이 제한도 필요하다. 당뇨병과 만성 췌장염은 적극적으로 치료하고 관리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번 연구가 보여주듯 과음과 폭음은 조절 가능한 위험 요인이다.
젊은 시기의 반복적인 음주 습관이 수년, 수십 년 뒤 암 발생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음주 패턴을 점검하는 것은 단순한 생활 개선이 아니라 장기 건강 전략의 일부다.
췌장암은 조용히 시작해 늦게 발견되고, 치료가 쉽지 않은 암이다. 그러나 생활 습관이라는 출발점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젊을수록 “괜찮겠지”라는 생각을 경계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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