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백병원 소아청소년과 이지은, 왜 우리 아이는 살이 찔까?
인제대학교 일산백병원 소아청소년과 이지은 교수

소아비만을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없는 이유
진료실에서 수많은 부모와 아이들을 만난다. 대부분 부모는 아이가 살이 찌는 문제를 걱정하면서도 “혹시 제가 관리를 제대로 못 해서일까요?”라며 스스로를 먼저 탓한다.
그러나 최근 국내외 연구들이 말해주듯, 소아비만은 더 이상 개인이나 가정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단순 생활습관 문제가 아니다. 성장기 아이들의 건강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만성질환’이자, 사회·의료·교육이 함께 다뤄야 할 구조적 문제다.
최근 대한비만학회 공식 학술지 Journal of Obesity & Metabolic Syndrome에 실린 사설을 통해 이 점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같은 호에 발표된 ‘한국 소아비만 예방 및 관리를 위한 부모의 인식, 장벽과 촉진요인 연구’ 결과는 우리의 현실을 매우 선명하게 보여준다.
인식은 높지만,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이유
조사에 따르면 국내 부모의 약 90%가 소아비만 관리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 실천율은 60% 수준에 그쳤다. ‘중요함을 알고 있음’과 ‘행동으로 옮기는 것’ 사이에는 꽤 큰 간극이 존재했다.
부모들은 여러 장벽을 토로했다. 장기적 위험성에 대한 이해 부족,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 지침 부재,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을까 하는 우려 등이다. 여기에 전문 프로그램 접근성의 부족, 의료비 부담과 같은 현실적 제약까지 겹치며 행동 실천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었다.
이러한 어려움은 진료 현장에서 매일 확인한다. 소아비만 관리는 영양·운동·생활습관 조절·정기검사 등 복합적 요소를 장기간에 걸쳐 이어가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의료·학교·지역사회 시스템은 이러한 장기 관리 구조를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
소아비만은 ‘가정의 몫’이 아냐...공동체가 함께 움직여야
소아비만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의료·가정·학교·지역사회가 연계된 통합관리체계가 반드시 필요하다.
첫째, 건강보험 적용 범위를 확대해 장기적 관리에 필요한 의료비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 미국 Medicaid 확대 이후 취약계층 아동의 BMI가 개선된 사례는 이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둘째, 학교에서의 조기 발견과 전문기관 연계가 중요하다. 학교는 아이들의 생활습관 변화와 체중 증가를 가장 먼저 관찰할 수 있는 곳이며, 미국 아이오와주의 SWITCH 프로그램처럼 학교·가정·지역사회가 연결된 모델은 실제로 효과가 입증되었다.
셋째, 지역사회 기반의 맞춤형 프로그램 확대가 필요하다.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영양·운동 프로그램이 갖춰져야 부모가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
미래 세대를 위한 가장 효과적이고 확실한 투자
소아비만은 단순히 ‘조금 통통한 아이’로 그치는 문제가 아니다. 성장기 체중관리는 성인기 만성질환 위험을 감소시키는 가장 핵심적인 예방법이다. 조기에 발견해 다학제적으로 개입할수록 아이의 미래 건강을 지켜낼 수 있다.
우리는 이제 소아비만을 개인의 노력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부모의 인식을 행동으로 전환시키고, 장기적 관리가 가능한 국가적·사회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사회가 미래 세대의 건강을 위해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과제다.
아이들의 몸은 스스로 바꾸기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아이들을 둘러싼 환경을 바꿀 수 있다. 그 변화가 더 이상 미뤄져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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