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가족을 돌보는 '가족돌봄 청년 (Young Carer)'

'가족돌봄 청년' 늘고 있지만, 추산만 할 뿐 정확한 자료 없어
경제적, 정신적 지원 절실
빨리 특별법 제정돼야
  • 은현서 기자
  • 발행 2023-04-26 14:48

[사진=게티이미지뱅크]
2021년 5월, 대구에서 가족간 살해 사건이 일어났다. 22세 청년이 아픈 아버지를 간병하다 제대로 돌보지 않아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이다. 사건 초기에는 뇌출혈로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를 돌보지 않고 방치한 패륜적인 행위를 한 아들로 보도가 되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약 8개월 동안 입원 치료를 받았지만,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어 어떨 수 없이 퇴원 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가스, 전기가 끊긴 상태이고 당장 쌀 없이 없어 삼촌에게 2만원을 빌려달라고 연락을 할 정도로 돈이 없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그러한 아들의 상황을 알고 있었고, 아버지의 병이 아직 어린 아들에게 극심한 삶의 고통을 가져오는 것을 보고 아들을 위해 스스로 식음을 전폐했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아버지는 결국 숨을 거뒀고, 아들은 법정에 섰다. 경찰·검찰 조사에서 아들은 "혼자 아버지의 병간호를 감당할 능력이 되지 않았다. 채무 등의 경제적 이유로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다"고 진술했다. 아들은 지난해 3월 징역 4년 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이다.

이 사건 이후로 영 케어러, 가족돌봄청년 (Young Carer어린 나이에 가족을 돌보는 청년, 청소년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고령화 사회를 지나 고령사회에 접어들면서 간병갈등, 간병살인, 노노간병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어왔지만, 나이어린 자식들이 부모나 조부모, 또는 형제, 자매들을 볼보는 것에 대해서 인식하지 못했다. 심지어 그것을 지칭하는 용어조차 없어서 외국에서 쓰는 용어인 '영 케어러' 라는 용어를 가져와서 쓰고 최근에서야 그 용어를 우리말로 순화하여 쓰고 있다.

이러한 '영케어러(Young Carer·가족돌봄청년) 간병살인'이 세상에 알려지자 당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던 주요 정당 후보들도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국회의 질타가 이어지자 보건복지부 장관도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관심은 그 때뿐이었다.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달라진 것은 없다.

성장시기의 가족 돌봄은 엉케어러들에게 신체, 정서, 경제, 사회적 지장을 초래한다. 더욱이 지금 이러한 청소년, 청년들의 경우 미래를 꿈꾸거나 계획한다는 것은 사치이다. 이들에게는 '돌봄' 에 잠식돼 미래를 생각할 그 어떤 기회 마저 없기 때문이다. 서울시 청년 활동 지원센터가 '영 케어러 케어링 지원사업'을 추진해 서울 거주 19~39세 영 케어러에게 지원금 130만원을 지급하고 있지만, 이것은 국가의 지원이라 보기에 턱없이 미흡한 금액이다. 따라서 가족돌봄청년들을 위해 정부와 지자체의 제대로 된 실태조사와 특별법 제정 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의하면 2022년 6월 24일부터 7월 31일까지 재단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은 만 7세~만 24세 아동·청소년 1천49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86명(46%)이 가족돌봄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한다. 많은 저소득 가정에서 아동, 청소년들이 가족 돌봄에 내몰리고 있다는 사실을 수치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가족돌봄아동·청소년 686명 중 절반 이상인 346명(50.5%)이 1년 이상 장기간 가족을 돌봤다. 5년 이상인 경우도 28.3%(194명)에 달했고 그중 60%(117명)가 중·고등학생이었다. 이들은 가족 구성원 중 유일하거나 가장 많은 돌봄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 어린나이에 떠맡안은 가장의 무게

가족돌봄청년들을 최소 두 가지 이상의 어려움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심리적인 부담과 함께 의료, 교육비 등 경제적인 어려움이다. 가족의 돌봄이 필요한 청년들이 누구의 도움도 없이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대부분 한참 공부해야 하는 시기의 청소년,청년들의 어려움은 공부에 집중할 수 없다. 본인이 처한 상황을 극복하려면 조금 더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서 취업하는 것뿐인데 그조차 불가능해서 가난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사람들은 쉽게 생각한다. 국가의 지원을 받으면 되지 않느냐고. 그러나, 국가에서 지원을 받으려면 끊임없이 서류로 가난을 증명해내야 하고, 운좋게 좋은 일자리를 구해 일을 할 수 있어서 돈을 벌면 지원이 끊긴다. 24세가 되지 않으면 연대보증인이 될 수 없어 보증인이 되어줄 어른을 찾아 헤매야하는 등, 어려움은 첩첩산중이다.
아픈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견뎌내야하는 삶의 무게는 여전하다. 어린 나이에 혼자 생계를 감당해야하기 때문이다. 가족돌봄청년들을 위한 전담 부서를 만들고 관리 제도를 개발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과 지난 5일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가족 돌봄 아동·청소년·청년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재단은 '한 명의 하루, 두 명의 삶'이란 이름으로 가족돌봄아동청소년에 대한 정책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 운동을 등을 지난해 11월부터 벌이고 있는 초록우산재단은 "우리나라에는 영케어러에 대한 정의, 실태조사, 지원 방안을 규정하는 관련 법률이 없다"며 "최근에서야 정부의 지원대책 수립방안이 발표됐지만 실태조사 대상에서 초등학생 이하 아동은 제외됐다. 초등학생을 포함한 모든 연령의 영케어러에 대한 실태조사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실질적이고 제대로된 실태조사 절실

지난 20일 서울시가 14~34세 청소년·청년 2988명을 대상으로 한 실태 조사에 따르면 이들 중 900여 명이 장애 또는 질병을 앓는 가족 구성원을 돌보거나 생계를 부담하는 '가족 돌봄 청년'으로 드러났다. 이번 조사에서 발굴한 900명 중엔 여성이 598명, 남성이 302명으로 여성이 두 배 가까이 많았다.

돌보는 대상은 주로 조부모와 부모였다. 할머니를 돌보고 있다는 응답이 28.2%로 가장 많았고, 아버지 26.1%, 어머니 25.5% 순이었다. 돌봄 대상자가 여럿 있는 경우도 상당했다. 돌봄 청년들은 돌봄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 월 소득이 200만원 미만인 경우가 592명으로 전체의 65%였다. 200만~299만원은 전체의 24%, 300만원 이상인 경우는 11%에 그쳤다.

가족 돌봄 청년이 가장 필요로 하는 건 경제적 지원이었다. 주거비 부담이 필요하다고 답한 청년이 66.6%로 가장 많았고, 기초생활 해결이 어렵다고 답한 경우도 64.1%나 됐다. 생계유지 때문에 학업을 중단하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는 사례도 있었다. 학습·취업에 대한 지원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43.9%였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국가별로 청소년 인구의 약 5~8%가 가족돌봄청년인 것으로 분석된다. 우리나라 청소년 인구에 대입하면 18만4천~29만5천명의 영케어러가 존재할 수 있다는 추정치가 나온다. 그러나 복지부의 조사로 파악된 가족돌봄청년은 추정치의 0.29~0.46%에 불과하다.

단지 서울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각 지자체 차원의 실태조사와 조례 제정도 절실하다. 지난해 10월 서울시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가족돌봄청년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만들었다. 조례안에는 가족돌봄청년 발굴과 지원 정책이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조직·인력·예산 등을 확보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와 함께 가족돌봄청년에 대한 실태조사 의무도 명시했다. 서울시가 900명의 가족돌봄청년을 발굴·지원하겠다고 밝힌 배경에는 이 실태조사가 있었다.

가족 돌봄 청년들의 경우, 어린 나이에서부터 돌봄을 시작해 장기적이고 관성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따라서 본인이 힘들다는 것을 명확하게 인지할 수 없다. 또 스스로 돌봄과 가난의 이중고를 드러내봤자 좋을 것이 없다는 생각도 팽배하다. 학생이라면 자신이 하는 돌봄이 왕따의 이유가 되기도 하고, 직장인이라면 동료들의 불편한 시선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누가 어디에 몇 명이 있는가라는 수치를 알기 위한 행정상의 편의적인 설문조사 방식으로는 드러나지 않는다. 따라서 제대로 된 실태조사와 적극적인 지원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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