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병, '저장장애'

초창기 '저장강박'에서 '저장장애'로 따로 분류
나이를 불문하고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병
  • 은현서 기자
  • 발행 2023-05-12 16:54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지난달, 인천 계양구는 저장강박 의심 가구 지원조례'를 통과 시켰다. 그러나, 이미 계양구는 2012년 부터 비슷한 사업을 실시하고 있었다. 역시 같은 달, 부산 남구에서는 '저장강박 위기세대' 환경 정비에 나섰다. 충주시도 마찬가지로 저장강박증 세대를 위해 환경개선에 나섰다. 과거, 티비에서나 볼 수 있었던 대단하고 특이한 일 처럼 여겨졌던 저장강박증 증세를 보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제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게 되었다. 거의 모든 지자체의 주민센터에 저장장애 가구가 있다고 보고되었다. 이를 위해 저장장애를 가진 위기 세대에 대한 대책을 세워서 이를 행하고 있는 것 역시 제법 된 이야기이다.

저장장애, 저장강박증(Compulsive Hoarding Syndrome)은 사전적으로는 강박장애의 일종으로, 저장강박장애, 저장강박증후군, 또는 강박전 저장증후군이라고도 한다. 어떤 물건이든지 사용 여부에 관계 없이 계속 정장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쾌하고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는 습관이나 절약 또는 취미로 수집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로, 심한 경우 치료가 필요한 행동장애로 본다.
초창기의 연구에서는 강박적인 증상으로, 강박장애의 하위 단계로 보았으나, 강박증 치료에 사용되는 약물인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가 저장강박 환자들에게는 통하지 않아서 강박증과는 다른, 독립적인 정신질환으로 보고 최근에는 의학적으로 '저장장애' 라고 분류하였다. 하위단계가 아니라 독립된 연구와 치료가 필요한 장애로 보는 것이다.

저장장애는 이웃에 의해서 발견되고 문제가 수면위로 드러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마당이나 혹은 방 안에 어디선가 주워와 쌓아온 물건들이 온 집안을 꽉 채우고, 집 밖으로 악취가 진동을 하며 쥐나 벌레, 구더기가 들끓어 이웃과 갈등을 빚고, 경우레 따라서는 쌓아놓은 물건이 발화하여 화재를 일으키거나, 쌓아두었던 물건이 떨어지면서 낙상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것을 보다못한 이웃의 신고로 이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이렇게 이웃에 의해 발견되고 신고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은 저장장애를 가진 당사자가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 자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2012년 미국에서 공식적으로 진단된 '저장강박'은 절약을 위해서 물건을 아껴쓰고 버리지 않는 것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저장장애는 가치판단과 의사결정을 어려워하는 데에서 생긴다. 따라서 자신이 가진 물건이 필요한것인지, 필요 없는 것인지, 쓰레기인지 아닌지를 구분하지 못하는데다, 이 물건을 버려야 하는지 두어야 하는지 판단하지 못하는 상태이다. 이것은 뇌의 전두엽에 문제가 생겨서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거기에 전체 인구의 2-5% 가량에서 발생한다고 한다. 일반적인 생각보다 발생률이 높은데, 그 이유는 저장강박을 가진 환자들이 그 질환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그런 이유로 치료를 받지 않는데다가 대인관계가 제약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저장강박증상은 청소년기부터 일부 발생한다. 대개는 11-15세 경부터 증상이 시작되어 점차 만성화되고 지속되는 양상을 보인다.

저장장애는 치매, 기질성 뇌손상, 강박증, 조현병, 우울장애 등의 질환에서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치매 환자의 20%가량에서 저장강박증상을 보인다. 뇌졸중이나 뇌출혈 등의 뇌질환 환자의 15%가량에서도 증상이 나타난다. 기전상 강박증(Obsessive Compulsive Disorder)과 유사한데, 강박장애 환자의 30% 정도에서 저장장애를 보인다. 그외의 다양한 질환에서 저장강박증상을 보일수도 있다.
뇌의 기능적인 면에서, 전두엽의 기능이상과 후두엽의 대사저하와 연관되기도 한다. 일부에서는 뇌 내의 세로토닌 과이이이나 도파민 저하와의 연관성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사례1
부산의 저장장애를 가진 A씨는 약 5년 동안 지인의 가게 뒷편에 있는 주차장과 콘테이너 공간에 물건을 쌓아두었다. 고장난 가전제품, 헌 옷, 신발 등 온갖 잡동산이를 계속 쌓아두고 생활을 했다. 따라서 각종 유해물질이 쌓아놓은 물건에서 새어나왔으며, 해충이 들끓고 악취가 발생했다. 따라서 끊임없이 주위의 민원 신고가 이어졌다.
이런 이유로 해당 행정복지센터에서는 A씨에게 연락을 취해 청소를 해 주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A씨는 처음에는 쓰레기 청소에 동의를 하였으나, 막상 청소가 시작되자 물건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했다. 청소를 하는 자원봉사자들이 물건을 밖으로 들어낼 때 마다, 썩고 곰팡이가 핀 물건도 본인이 사용할 거라며 빼앗아 제자리에 두었다. 따라서 청소는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았고, 청소하는 내내 물건을 들어내고 제자리에 두는 등의 승강이가 벌어졌다. 겨우 자원봉사자들과 주민들의 설득으로 청소를 마치기는 하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어디선가 낡은 물건을 주워오는 A씨를 주민들은 목격했다.

사례2
경남산청의 모녀가 사는 집에 불이 나서 40대 딸이 목숨을 잃었다. 모녀는 지적 장애를 갖고 있었으며, 평소 저장장애를 앓고 있었다. 이 모녀는 전구가 고장이 나서 불이 켜지지 않자 주방에 촛불을 켜뒀다. 이 촛불이 근처에 쌓아 뒀던 쓰레기로 옮아 붙으면서 불길이 번졌다. 한꼐 있던 60대 어머니 B씨는 스스로 대피하였으나, 주방에 있던 딸은 불길을 피하지 못했다. 불은 1시간 45분 만에 꺼졌으나, 모녀가 살던 집은 전소하였다. 모녀는 동네를 돌며 폐지 등을 모아 집에 쌓아두는게 하루 일과였다. 쓰레기가 많이 쌓여 청소를 해주려고 주민복지과에서 나가도 강하게 거부해 청소를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모아온 쓰레기에 불이 붙어 목숨을 잃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사례3
서울의 3층짜리 단독주택은 발코니, 계단, 마당이며 지붕까지 쓰레기가 쌓이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이 단독주택의 쓰레기들은 커다란 비닝 봉지에 묶여 여기저기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대문은 굳게 잠겨 쌓인 쓰레기에 미어터지고 있었다. 이 쓰레기를 주워다 놓은 집주인도 문이 잠겨서 담을 넘어 자신의 집으로 들어간다고 이웃들이 말했다.
이 쓰레기를 가득 모은 집의 주인은 60대 여성. 쓰레기를 모으는 것이 하루의 일과라고 한다. 아침 일찍 나가서 종일 쓰레기를 주워 모으고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이 여성은 쓰레기를 줍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수술을 받은 탓에 허리가 굽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레기를 모으는 것을 포기하지 못한다고 한다.
이웃들은 이 집과 여성에 대해서 진저리를 치고 있었다. 여름에는 악취가 심하고, 바퀴벌레가 날아다니고, 게다가 쓰레기를 쌓는 과정에서 이미 쌓아놓은 뒤태로운 쓰레기들이 떨어져 요란한 소리까지 낸다고 한다. 이런 탓에 이웃 중 누구도 민원을 안넣은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한다. 구청, 주민센터, 이웃까지 나섰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 이웃들의 말이다.

청소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저장장애

이러한 저장장애를 가지고 있는 세대들에 대해서 지자체가 청소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청소'는 일시적인 해결일 뿐 근본적인 해결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청소를 하고도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 다시 쓰레기를 모으고 어딘가에 쌓아놓는다고 한다. 게다가 요즘은 20-30대의 저장장애를 앓는 이들도 많아 저장장애는 나이를 불문하고 생기고 있다.

이러한 저장장애는 전반적으로 치료가 쉽지 않다. 가장 어려운 점은 당사자가 병에 대한 의식이 없어서 스스로 병원을 찾아가 치료는 받는 행위를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가족이나 이웃이 강권하여 병원에 왔다 하더라도, 스스로 의지가 없어서 치료를 그만두고 가족들 역시 지쳐서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전반적으로 강박장애 치료와 유사하지만, 강박장애보다 치료우지가 어렵고 약물에 반응이 떨어진다. 현재로서는 약물치료와 인지행동치료의 병행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인지행동치료는 초기에는 인지적인 재구성을 통하여 일정한 패턴을 만들고, 후에 그 패턴대로 체계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치료이다. 물건을 구분하고 버리는 패턴을 만들어서 물건을 버리게 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약물치료로는 항우울제인 세로토닌 제제가 가장 효과적이라 알려져 있다. 소량의 항정신병약제, 항불안제 등도 효과를 보인다고 알려져 있으나, 앞서 '저장강박'에서 '저장장애'로 구분이 된 만큼 새로운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저장장애는 자발적으로 좋아지지 않는다. 갈수록 만성화돼서 치료반응이 좋지 않으므로 초기에 치료가 중요하다. 이른나이에 발병하여 그 기간이 길 수록 더 만성화되고 날 잣지 않는다. 중년의 나이에 갑자기 발생한 경우에는 다른 원인에 의한 경우가 많으므로 오히려 예후가 더 좋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저장장애는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생할 수 있다. 가족이나 이웃을 유심히 바라보고 초기부터 전문의와 상담을 하여 원인을 평가하고 적절한 치료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 주변의 도움이 가장 좋은 예후를 가져온다는 것은 당연한 일 일 것이다. 

<저작권자 ⓒ 헬스케어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