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집중조명9] 시대에 맞춰 걷다(1)

한의원은 쉽게 갈 수 있는 동네 병원
자연과 어울려 살아가는 사람 중심의 과학이며 의학
  • 은현서 기자
  • 발행 2023-08-21 11:23

[사진=인스타그램 @koreamedicinedoctors]


['한의학' 이라고 하면 특별하거나, 생소할 것입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 땅에서 함께한 의학인데도 말이지요. 오래전부터 함께 했다는 그 이유만으로 한의학은 매우 고전적인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거기에 더해 수술을 하지 않아 수동적인 의학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한의학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람들의 곁에서 함께 걸으며 발전해 왔습니다. 그 발전을 인정받아 '한의학'을 영어사전에 검색하면 'Korea medicine' 이라고 표기돼 있습니다.

여기, 더욱 건강한 일상을 지키기 위한 한의사들의 모임이 있습니다. '모든 병의 근본 치료' 라는 뜻의 'MOBON(모본)' 입니다. MOBON에는 같은 뜻을 가진 한의사들이 모여, 자신들의 임상연구를 공유하고, 현대사회의 질병에 대해 연구하고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노력으로 많은 이들이 아프기 전에 쉽고 가깝게 한의원을 찾아 상담을 받고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를 바랍니다.

평균 기대수명이 늘어난 현대 사회에 MOBON은 '한의학'이 더욱 사람들의 삶속으로 밀접하게 들어가 1차 진료기관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 역할이 크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K-medicine의 길이 있다고 믿습니다.

주 2회, 월요일과 목요일 'MOBON'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시대에 맞춰 걷다

오랜만에, 혹은 처음 한방병원이나 조금 큰 한의원에 방문한 사람이라면 깜짝 놀라는 경우가 많다. 시쳇말로 한의원 같지가 않다는 것이다. 그렇게 말 할 법도 한 것이, 한의원에서 쓰는 치료기는 하나같이 다 전자장비이다. 냉∙온 경락 요법이며 적외선 치료기는 기본이고, 초음파 치료기, 극초단파 치료기, 초단파 치료기등의 전자장비를 이용한 치료법은 이미 널리,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다. 또, 한의원에서 안압 측정기∙청력 검사기 등도 사용하고 있으니, 침 맞고, 뜸 뜨겠지 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한방병∙의원에 방문한 사람이라면 놀라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놀란 이들은 또 감탄처럼 붙이는 말이 있다. 한의원이 병원인 줄 알았다는 것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한의원은 병원이 맞다. 우리가 감기에 걸렸을 때 흔히들 말하는 ‘병원에 가봐야겠어.’ 라고 할 때의 병원, 즉, 병상의 수로 구분하는 병원이 아닌, ‘치료기관’으로써의 병원 말이다. ‘한의원이 병원인 줄 알았다’ 라는 말은 그동안 사람들이 한의학과 한방병∙의원에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이 어떠한지를 아주 잘 보여준다. 적어도 한의원은, 병이 나면 바로 찾아가기 위해 생각나는 곳은 아니라는 말이 기저에 깔려있음을 알 수 있다. 병원이라고 하면 흔히 서양의학의 기관에 국한된 것으로 생각한다. 한의원이 사람이 병이 나면 먼저 찾아가던 곳 이었던 시간이 우리 역사에서 더 길었음에도, 사람들의 생각이 이토록이나 견고한 벽을 쌓고 ‘고정’ 되어 있었음에 놀랍다. 그 견고한 벽 밖으로 한 걸음 내 딛기가 쉽지 않은 것이 한의학의 현실이다.


이러한 생각의 바탕에서 많은 논란이 양상 되었다. 최근 한의사의 초음파기계를 사용한 병 진단이 그러하다. 작년 2022년 12월, 한의사의 초음파기기 사용이 의료법 위반이 아니라는 대법원의 판결이 있었다. 초음파기기 사용에 대한 논란은 무려 20년을 끌어온 일이다. 대법원 판결의 요지는 “의료공학과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새로운 의료 행위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현대 의료기기를 둔 갈등과 논란의 역사는 깊었다. 기술은 계속하여 발전해 왔고, 인류는 발전한 기술이 만들어낸 기계를 사용하고 도움을 받으며 살았음에도 한의학계에서는 조금 달랐다. 문명과 과학기술이 만들어낸 기계를 선뜻 사용하는 것은 짙은 안개속에 서 있는 듯 불분명했다. 나아가 그것에 대한 이해관계와 갈등의 문제는 마치 던져 놓은 그물처럼 펼쳐져 있었다.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하는 행위가 무면허 의료행위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이 급선무였다. 때문에 해당 의료기기의 개발, 제작원리가 한의학의 학문적 원리를 기초로 했는지, 이것을 사용하는 행위가 한의학의 이론이나 원리를 응용 또는 적용하기 위한 것인지를 판단의 기준으로 삼았다. 하지만 이번 판결에 의해 이제는 진단을 내리기 위해 장비를 사용하는 것이 한의학과 무관할 수 없다는 쪽으로 바뀐 것이다. 이것은 한의학 앞에 놓인 견고한 벽을 허물고, 한의학의 새로운 Originality라는 걸음에 힘이 실린 것은 아닐까.



모든 것은 철학에서 태어난다

누가 지정해 놓은 것도 아니고 시킨 것도 아닌데, 한의학이라고 하면 ‘비과학적’이라고 흔히들 생각했다. 이 말은 시간이 지나면서 잘못됐다는 것이 밝혀졌고 이제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잘못됐음을 알고 있다. ‘과학’ 이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의미 그대로의 ‘과학’ 이라는 이름으로 불린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과학’ 이라는 단어가 없었을 뿐이지 우리나라에 ‘과학’ 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물며 초등학생도 장영실이 조선시대의 최고의 과학자라는 것 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자연속에서 생을 이어가기 위해서 날씨를 읽어야 했고, 해를 읽어야 했으며, 비와 바람, 별을 읽어야 했다. 자연에서 약을 구하기 위해 어느 때, 어떤 땅, 어떤 기후, 어떤 계절과 시기가 가장 적당한지를 알아야 했다. 어떤 시기에 어떤 병에 걸리는지, 걸리는 병 마다 맥은 어떻게 다르고, 어떤 혈에 어떤 침을 놓아야 하는지 알아야 했다. 그리고 일정한 루틴을 가지고 순환하는 인체의 기혈을 우주의 그것에 빗대어 설명하고 이해하고 적용하였다. 이것이 과학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과학'의 기준은 보통 서양과학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기준을 서양과학에 두고 이야기를 한다면 한의학은 과학적이지 않을 수 있다. 이대로 생각을 두는 것은 과연 옳을까. 이미 수년 전부터, 콜럼버스의 신대룩 발견을 ‘구대륙 침략’ 으로 봐야 한다는 문제제기가 있고, 세계의 많은 학교들에서 콜럼버스라는 인물을 재평가 하기 시작하였다. 시대가 변하면서 역사나 인물에 대해 절대적인 평가를 했던 것들이 상대적인 관점으로 보고 평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의학이 비과학적이라고 말하는 관점의 기준이 어디 있는지를 한 번쯤은 돌아봐야 할 일이다.


(목요일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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