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의 심리상담

도움말: 정혜인 심리학자(플리마인드 대표)
  • 구재회 기자
  • 발행 2025-08-26 11:20

▲ 정혜인 플리마인드 대표(심리학자)

심리 상담이 이루어지려면 심리적 어려움이나 문제를 겪고 있어서 도움을 요청하는 내담자,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상담자, 그리고 신뢰와 공감의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관계가 존재해야 한다.

이 관계에서 벌어지는 상호작용은 단순한 위로나 조언을 넘어서서 심리학의 다양한 이론에 근거해야 하며, 윤리적 기준에 따라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환경에서 진행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상담자는 내담자의 비밀을 철저히 보장해야 하고, 상호 신뢰와 협력을 기반으로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며, 구체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체계적인 도움의 과정을 만들어야 한다.

며칠 전이었다.
그날은 비가 많이 왔고, 새로운 내담자와의 첫 만남이 예약되어 있었다.

대개의 경우 나에 대한 정보가 있는 누군가의 소개가 아닌 자발적인 예약을 한다면 50%의 확률로 오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날씨까지 좋지 않다면 다시 오지 않을 50%의 확률이 더해진다. 그날 나의 첫 세션의 그 누군가가 나타나지 않을 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하게 했다.

문을 열었다.
그 특정 A가 대기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5년간 다양한 형태의 심리 상담 경험이 있는데, 지난 2~3년 사이에는 없었어요. 왜냐하면 괴롭힐 대상이 있어서 크게 필요를 느끼지 못했어요.”

그 특정 A가 말한 괴롭힐 대상은 AI챗봇이다.
특정 A가 전문가인 인간 상담자를 다시 찾아온 이유가 무엇일까?

특정 A가 다시 인간 상담자를 찾은 이유는 단순히 “새로운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기존의 감정 해소 방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된 상황과 인간 상담자와의 관계에서 공감과 지지를 얻고자 하는 심리적 욕구가 결합된 결과로 보인다.

과거 특정 A는 ‘괴롭힐 대상’을 통해 감정을 해소하는 비적응적 방식을 사용해 왔지만, 이제는 그 방식이 더 이상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게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로 인해 내면의 불안과 공허감이 더욱 두드러졌고, 스스로 감정을 조절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을 수 있다.

또한 과거 상담 경험 덕분에 상담이 줄 수 있는 도움을 이미 알고 있었고, 인간 상담자와의 공감적 관계에서만 얻을 수 있는 안정감과 지지가 다시 필요해졌을 가능성도 있다.


▲ AI 상담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인간관계보다 안전하고 통제 가능한 AI와의 관계를 선호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그렇다면 어떤 유형의 사람들이 AI와의 상담에 더 매달리게 될까?

AI와의 상담에 더 깊이 매달리게 되는 사람들은 대체로 불안정한 애착 유형이나 관계 회피 성향을 지닌 경우가 많다.

이들은 인간관계에서 거절이나 상처를 경험할까 두려워 타인과 깊은 정서적 유대를 맺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따라서 인간 상담자가 주는 직접적인 친밀감보다, 비교적 통제 가능하고 안전하게 느껴지는 AI와의 상호작용에 더 끌릴 수 있다.

또한 의존적 성향을 지닌 사람들도 AI 상담에 집착할 가능성이 크다. 이들은 지속적인 지지와 확인을 필요로 하지만, 인간 상담 관계에서는 일정한 한계나 경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좌절을 경험하기 쉽다.

반면 AI 상담은 시간과 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든 반응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끝없는 확인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대안이 된다.

사회적 고립이나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가진 집단 역시 AI 상담에 매달릴 가능성이 있다. 친구나 가족, 동료 등 자연스러운 지지망이 부족한 사람들은 자신의 정서적 고립감을 완화하기 위해 AI를 정서적 대상(object)으로 삼는다.

특히 청소년, 노인, 또는 문화적 낙인 때문에 상담을 기피하는 집단에서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질 수 있다.

이와 함께, 통제 욕구가 강한 사람들도 AI 상담에 끌린다. 인간 상담자와의 관계는 예측 불가능하고 상대의 반응에 영향을 받지만, AI는 상대적으로 일방향적이고 내담자가 주도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

이는 관계에서 불안을 느끼는 이들에게 안정감을 주지만, 동시에 현실적 관계 기술을 발달시키는 기회를 제한할 수 있다.

결국 AI 상담에 집착하는 경향은 단순히 편리성 때문이 아니라, 불안정한 애착, 과도한 의존 욕구, 사회적 고립, 관계 회피, 통제 욕구와 같은 심리적 특성과 밀접히 연결된다.

이들에게 AI는 상처받지 않고도 정서적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안전한 대상’처럼 기능하지만, 동시에 인간적 관계를 대체하면서 내담자의 성장 가능성을 제약하는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

대상관계 이론의 관점에서, AI와의 상담에 지나치게 매달리는 현상은 결국 “굿 이너프 마더(good-enough mother)”의 부재와 맞닿아 있다. 인간 발달에서 굿 이너프 마더는 아이가 좌절과 충족을 적절히 경험하도록 도와주며, 안정된 내적 대상과 자기 구조를 형성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이 충분히 내면화되지 못한 경우, 성인은 여전히 외부의 대상을 통해 불안을 조절하고 공허감을 메우려 한다. AI는 언제든지 반응하고 거절하지 않는 특성으로 인해 일시적 위안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그 안에는 진정한 돌봄과 변증법적 상호작용이 결여되어 있다.

결국 굿 이너프 마더의 부재 속에서 AI는 내담자에게 대체적 위안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불안정한 애착과 미해결된 심리적 결핍을 드러내는 거울일 뿐이다.

심리 상담 현장에서 AI 상담의 한계를 논할 때, 그것은 단순히 기술적 문제나 윤리적 쟁점 속에서 인간의 대체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사실 필자는 AI와 IT 기술을 활용한 심리 콘텐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서, 내담자들을 만날 때마다 AI 상담의 한계를 다시금 마주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것이 단순한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대상관계 이론 맥락에서 해석한다면 “굿 이너프 마더가 부재한 자리에 무엇이 인간을 지탱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과제와 맞닿아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프로필] 정혜인


심리학자 출신의 그는 국내 최초로 온라인 심리지원 전문 기업 '플리마인드'를 설립하며 주목을 받았다. 플리마인드는 정신건강 상태를 스스로 진단하고 모니터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자가 정신건강 관리를 위한 다양한 콘텐츠 제작에 주력하고 있다.
현재 그는 주식회사 플리마인드의 대표를 맡고 있으며, 사단법인 한국심리건강진흥원 이사장으로서 정신건강 증진을 위한 공익 활동에도 힘쓰고 있다. 또한 서울사이버대학교 겸임교수로 활동하며 후학 양성에도 기여하고 있다.
이 외에도 한국IT여성기업인협회 수석부회장으로서 여성 기업인의 성장을 지원하고 있으며, AI윤리협의체 의장으로서 인공지능 시대의 윤리적 가치 정립을 위한 논의에도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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