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취인 줄 알았는데…” 연말 폭음이 부른 치명적 췌장염

지난주 잦은 연말 모임을 이어가던 직장인 김모(48) 씨는 평소보다 많은 양의 술을 마신 뒤 다음 날 아침부터 명치 부근에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그는 숙취라고 생각하며 진통제를 먹었지만 통증은 가라앉지 않았고 오히려 등으로 번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구토와 발열까지 나타났다.
결국 병원을 찾은 김씨는 ‘급성 췌장염’ 진단을 받았다. 의료진은 “조금만 늦었더라면 중증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회식과 술자리가 자연스레 늘어나는 시기다. 음주량이 증가하기 쉬운 만큼 소화기질환 위험도 커지는데, 특히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의 술을 마시는 폭음은 급성 췌장염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소화효소가 췌장을 스스로 공격…심하면 장기부전 위험
급성 췌장염은 췌장에서 만들어지는 소화효소가 비정상적으로 일찍 활성화되면서 췌장 조직을 직접 손상시키는 염증성 질환이다.
원래는 췌장에서 생성된 효소가 십이지장으로 이동해 음식물을 분해하지만, 췌장 내부에서 먼저 활성화될 경우 췌장 조직이 스스로 파괴되기 시작한다.
이 과정이 심해지면 패혈증, 쇼크, 다발성 장기부전 등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어 조기 진단과 치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가장 흔한 원인은 담석과 과도한 음주다. 담석이 담관과 췌관이 만나는 부위를 막으면 소화효소가 배출되지 못해 췌장 내부에 고이면서 염증을 일으킨다.
알코올 역시 췌장의 분비 기능을 교란해 급성·만성 췌장염 모두의 발생 위험을 높인다. 이 밖에도 고중성지방혈증, 바이러스 감염, 외상, 유전적 요인 등이 원인이 될 수 있다.
주요 증상은 갑자기 시작되는 상복부 통증이다. 통증은 등으로 뻗치는 양상으로 나타날 수 있고, 구토·메스꺼움·발열이 동반되기도 한다. 심한 경우 호흡곤란이나 혈압 저하, 의식 저하가 나타날 수 있어 즉각적인 응급조치가 필요하다.
혈액·영상검사로 진단…세 가지 기준 중 두 가지 충족하면 확정
급성 췌장염이 의심되면 혈액검사와 영상검사를 통해 진단이 이뤄진다.
혈액검사에서는 아밀라아제와 리파아제 수치가 정상 상한치의 3배 이상 상승하는지 확인하며, 복부 CT나 MRI, 초음파 검사에서는 췌장의 부종, 염증 범위, 괴사 여부 등을 확인한다. 담석의 존재 여부도 함께 살펴 원인을 파악한다.
의학적으로는 ▲췌장염을 시사하는 임상 증상 ▲혈중 소화효소 수치 상승 ▲영상검사 소견 등 세 가지 기준 중 두 가지 이상을 충족하면 급성 췌장염으로 진단한다.
원인 제거와 췌장 휴식이 치료의 핵심…중증이라면 적극적 치료 필요
치료는 원인을 제거하는 것과 췌장을 쉬게 하는 보존적 치료가 병행된다.
먼저 원인 제거가 필요하다. 음주가 원인이라면 즉시 금주하는 것이 중요하며, 담석으로 발생한 췌장염의 경우 내시경을 이용한 담석 제거 시술(ERCP)을 시행한다. 고중성지방혈증이 원인이면 혈중 지방 농도를 낮추는 약물치료가 필요하다.
이와 함께 췌장을 ‘쉬게’ 하는 치료가 진행된다. 일정 기간 금식을 유지해 췌장의 소화효소 분비를 최소화하고, 충분한 수액을 공급해 탈수를 방지한다.
통증이 심할 경우 진통제를 투여해 증상을 조절하며 염증이 가라앉는 것을 돕는다. 경증 환자는 며칠 내 회복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췌장 괴사나 감염, 다발성 장기부전 등이 동반된 중증 환자는 상황이 달라진다.
보존적 치료만으로 호전되지 않을 경우 투석요법, 항생제 치료, 승압제 투여, 인공호흡기 치료 등 보다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감염을 동반한 괴사가 확인되면 내시경적 또는 수술적 괴사 제거술을 고려한다.
“연말 폭음 가장 위험…복부 통증 지속되면 바로 진료받아야”
고려대학교 안산병원 소화기내과 현종진 교수는 “급성 췌장염을 예방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무리한 음주를 피하는 것”이라며 “연말 회식처럼 짧은 시간에 많은 술을 마시는 폭음은 위험성이 특히 커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폭음 후 복부 통증이 계속되면 단순한 숙취라고 넘기지 말고 즉시 진료를 받는 것이 안전하다”며 “또한 고지방 식습관, 비만, 고중성지방혈증 등은 담석 발생 위험을 높일 수 있어 평소 생활습관 관리도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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