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가 달라지는 연말, ‘장’은 먼저 알아챈다

잦은 모임과 과식·과음 속에서 장 건강을 지키는 생활 습관
  • 강주은 기자
  • 발행 2025-12-17 14:30

▲ 연말은 잦은 모임으로 식사와 수면 리듬이 흐트러지며 과식과 과음이 반복돼 몸의 균형이 가장 쉽게 무너지는 시기다. [사진=셔터스톡]

연말은 몸의 균형이 가장 쉽게 흔들리는 시기다.


송년회 등 각종 모임이 이어지면서 평소 지켜오던 식사 시간과 수면 리듬은 흐트러지고, 자연스럽게 과식과 과음이 반복된다.


문제는 이 같은 생활 변화가 가장 먼저 영향을 미치는 곳이 바로 ‘장’이라는 점이다.

장은 단순히 음식을 소화하는 기관이 아니다.


우리 몸 면역 기능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고, 전신 건강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연말이 지나면 속이 더부룩하고 배변 리듬이 깨졌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아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장이 보내는 작은 불편 신호는 간 건강 악화나 만성질환의 악화로 이어질 수 있어 가볍게 넘기기 어렵다.

◇ 잦은 술자리, 장과 간을 동시에 지치게 한다

연말 장 건강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은 단연 술이다.


알코올은 위와 장 점막을 직접 자극해 염증 반응을 일으키고, 장내 유익균과 유해균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동시에 간에는 해독 부담을 집중시킨다.

과도한 음주로 간에 지방이 쌓이는 알코올성 지방간은 초기에 별다른 증상이 없어 방치되기 쉽다.


그러나 피로감이 쉽게 가시지 않거나 오른쪽 윗배가 불편하고 소화가 잘되지 않는 느낌이 반복된다면 이미 간과 장이 동시에 무리를 겪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전호수 이대서울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술은 1군 발암물질로, 고위험 음주는 단순히 간이 피곤해지는 수준을 넘어 알코올성 지방간과 간염, 간경화, 간암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특히 알코올성 간염은 금주만으로도 간수치가 4~6주 내 회복될 수 있지만, 지속적인 음주로 간경변 단계에 이르면 회복이 매우 어렵다.

간 기능이 떨어지면 담즙 분비와 해독 기능이 원활하지 않아 장의 소화·흡수 능력도 함께 저하된다. 술자리가 잦아질수록 장 트러블이 심해지는 이유다.


▲ 연말에 잦아지는 음주는 위와 장 점막을 자극해 장내 균형을 무너뜨리고, 간에까지 과도한 해독 부담을 주는
장 건강의 가장 큰 위협 요인이다. [사진=셔터스톡]

◇ 겨울 추위까지 겹친 연말, 만성질환자는 더 취약하다

연말연시는 만성질환자에게 특히 주의가 필요한 시기다.


추운 날씨로 혈관이 수축된 상태에서 과음과 과식이 더해지면 몸의 항상성이 쉽게 깨진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만성질환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는 이미 성인 인구의 절반에 이른다.

심뇌혈관 질환자는 연말 술자리에서 자주 등장하는 짠 안주와 기름진 음식, 알코올의 조합으로 혈압 변동 폭이 커질 수 있다.


당뇨병 환자 역시 술로 인해 저혈당과 고혈당이 반복되며 장 기능 저하까지 겹치기 쉽다.


만성 호흡기 질환자 또한 음주로 체내 수분이 빠지면서 장과 호흡기 점막이 동시에 건조해질 수 있다.

결국 연말의 생활 패턴 변화는 장을 시작으로 전신 건강을 흔드는 계기가 된다.


▲ 연말은 추위와 과음·과식이 겹치며 심뇌혈관·당뇨·호흡기 질환자 모두에서 장 기능 저하를 시작으로
전신 건강의 균형이 쉽게 무너지는 시기다. [사진=셔터스톡]

◇ 과식을 피하려면 ‘무엇을 먼저 먹느냐’가 중요하다

피할 수 없는 모임이라면, 무작정 먹는 양을 줄이기보다 식사 흐름을 조절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 된다.


식사를 시작할 때 무엇을 먼저 먹느냐에 따라 포만감과 혈당 반응, 장 부담이 크게 달라진다.

식이섬유가 풍부한 채소류를 식사 초반에 섭취하면 장운동이 촉진되고 포만감이 빠르게 형성된다.


이후 단백질 식품을 먹으면 혈당 상승 속도가 완만해지고, 자연스럽게 탄수화물 섭취량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이렇게 먹는 순서를 조절하는 것만으로도 과식과 혈당 급상승을 예방할 수 있다.

반대로 밥이나 면처럼 탄수화물 위주로 식사를 시작하면 혈당이 급격히 오르고, 포만감이 늦게 와 과식으로 이어지기 쉽다. 여러 재료가 한꺼번에 섞인 덮밥이나 볶음밥류는 특히 주의가 필요하다.

◇ 연말 간식 선택도 장에 영향을 준다

연말에는 식사 외에 간식 섭취도 늘어난다. 이때 어떤 과일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장 반응은 달라진다.


사과와 바나나는 모두 건강한 과일이지만, 장에서의 작용은 서로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사과는 식이섬유가 풍부해 장운동을 돕고 포만감을 오래 유지시키는 데 유리하다.


수용성 식이섬유는 소화를 천천히 진행시켜 혈당 급상승을 완화하고, 장내 유익균의 먹이가 된다.


수분 함량이 높아 자연스러운 수분 보충 효과도 있다. 다만 장이 예민한 사람은 복부 팽만감을 느낄 수 있어 섭취량을 조절하는 것이 좋다.

바나나는 칼륨 함량이 높아 혈압 관리에 도움이 되고, 에너지가 빠르게 공급되는 장점이 있다.


덜 익은 바나나에 포함된 저항성 전분은 장내 유익균 증식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다만 당 함량이 상대적으로 높아 당뇨병 환자는 섭취 시점과 양에 주의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특정 과일 하나에 집중하기보다, 여러 과일을 소량씩 나눠 먹는 것이 장 건강에 더 도움이 된다고 조언한다.


▲ 피할 수 없는 연말 모임에서는 식사량보다 먹는 순서를 조절하는 것이 효과적이며, 채소와 단백질을 먼저 먹는 습관만으로도
장 부담을 줄이고 과식과 혈당 급상승을 예방할 수 있다. [사진=셔터스톡]


◇ 연말 장 건강의 핵심은 ‘완벽’이 아닌 ‘회복’

연말 모임을 모두 피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중요한 것은 장과 간이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의식적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음주 후에는 최소 며칠간 금주하며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수분 섭취를 늘려 장 점막의 부담을 줄이는 것이 기본이다.

전호수 교수는 “안전한 음주는 없지만, 부득이하게 술을 마셔야 한다면 남자는 한 번에 4잔, 여자는 2잔을 넘기지 않는 것이 좋다”며 “하루 음주 후에는 최소 3일 이상 쉬는 것이 간과 장의 부담을 줄이는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연말의 즐거움이 새해의 건강 부담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속이 더부룩하거나 배변 습관이 달라졌다는 신호를 가볍게 넘기지 말아야 한다.


장을 배려하는 작은 선택이, 건강한 한 해의 출발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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