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워지는 한반도, 흔들리는 배추…김치 본국의 위기

기온 2℃ 상승만으로도 배추 적지 70% 감소… 생산 안정성에 경고등이 켜졌다
  • 구재회 기자
  • 발행 2025-12-11 03:05

▲ 지난 9월 강원 강릉시 왕산면 안반데기의 고랭지 배추가 재난 수준의 기후 영향으로 누렇게 변해 있다. 안반데기는 올해 극심한 가뭄과 폭염으로 작황이 매우 나빠 수확을 포기한 농가가 속출했다. [사진=연합뉴스]

한반도 기온이 계속 올라가면서 배추가 자라기 힘든 환경이 되고 있다.

여름·가을 배추를 키울 수 있는 땅이 줄어들고, 수확량도 들쭉날쭉해지면서 앞으로 김치를 안정적으로 만들 수 있을지 걱정이 커지고 있다.

매년 김장철이 되면 등장하는 ‘금배추’ 소식 역시 이제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기후 변화가 우리 식탁을 직접 흔들고 있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여름 배추가 자랄 땅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배추는 ‘서늘한 날씨’를 좋아하는 작물이다.

보통 18~20℃에서 가장 잘 크고, 25℃를 넘기면 속이 잘 차지 않거나 병이 생기기 쉽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 여름 기온이 크게 오르면서 여름 배추가 자랄 수 있는 지역이 빠르게 줄고 있다.


▲ 지구 온난화 정도(GWL)에 따라 여름철 김치배추를 재배할 수 있는 지역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여주는 그림이다. 왼쪽 상단의 지도는 현재 기준에서 배추 재배가 가능한 지역을 나타내고, 나머지 지도들은 지구 평균기온이 상승할 때 재배 가능 범위가 어떤 방식으로 축소되는지를 단계별로 나타낸 것이다.
[자료=한국기후변화학회지, 2025]

연구에 따르면 지구 평균기온이 1.5℃만 올라가도 우리나라의 여름 배추 재배 적지(가장 자라기 좋은 지역)는 절반 가까이 사라지고, 2℃ 상승 시 70% 이상 줄어든다. 3℃ 이상에서는 사실상 여름 배추 재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 문제는 특히 강원도 고랭지(해발 600m 이상)에서 심각하게 나타난다.


예전에는 이곳이 여름 배추의 주요 생산지였지만, 최근에는 이 지역마저 더워지면서 배추 재배 면적이 줄고 있다. 일부 농가는 결국 양배추나 다른 작물로 전환하고 있다.


▲ 지난해 10월 서울 한 대형마트에 양배추가 진열돼 있다. 김장철을 앞두고 배춧값이 고공행진 하면서 대체 채소가 인기를 끌었다.
[사진=연합뉴스]

◇고랭지에서는 수확을 포기하는 경우도

강원 태백 매봉산에서는 지난해 더위와 병해충 때문에 배추가 제대로 자라지 못했다. 많은 농가가 수확을 포기하거나 밭 전체를 폐기해야 할 정도로 피해가 컸다.

지난 4년 동안 매봉산의 배추 재배 면적은 절반 넘게 줄었고, 그 대신 더위를 조금 더 견디는 양배추 재배는 9배나 늘었다. 농민들은 “날씨가 너무 뜨거워지고 병충해도 많아져서 배추 농사가 점점 힘들어진다”고 말한다.

이런 변화는 김장철 배추 가격에도 영향을 준다. 생산량이 줄어들면 자연스럽게 가격이 오르기 때문에, 매년 ‘금(金)배추’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도 바로 이런 기상 변화와 관련이 있다.

◇과학자들은 ‘더위에 강한 배추 재배 기술’을 개발 중

배추 생산을 안정시키기 위해 과학자들은 다양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그린매거진에 따르면,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위승환 연구사 팀은 기후가 더워지는 상황에서도 배추를 지킬 수 있도록 여러 실험과 현장 연구를 진행 중이다.

대표적인 기술이 더위를 낮춰주는 재배 방법들이다.

미세살수 기술은 아주 작은 물방울을 공중에 뿌려 주변 온도를 4~5℃ 낮춰 주는 방식이다.

저온필름은 햇빛을 반사해 땅 온도를 낮추어 배추가 더위를 덜 받도록 돕는다.

생리활성제(글루탐산 기반)를 사용해 배추가 고온으로 지치는 것을 줄여주는 기술도 연구되고 있다.

또한 농업의 자동화·스마트화도 중요한 흐름이다. 스스로 물을 주거나 온도를 조절하고, 벌레를 자동으로 막아주는 장비들이 도입되면서 농민들의 노동 부담도 줄어들고 있다.

강원 고랭지가 너무 더워진 현실을 고려해 조금 더 낮은 산간 지역(준고랭지)에서 여름 배추를 시험 재배하는 시도도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새로운 배추 생산지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다.

◇결국 ‘더위를 견디는 품종’이 핵심

결국 품종이 바뀌면 생산의 운명이 바뀐다. 내고온성 품종 개발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배추 산업의 생존 전략이다.

연구에 따르면 배추 품종마다 고온을 견디는 능력에 큰 차이가 있다.

일부 품종은 기온이 조금만 높아져도 수확량이 크게 줄지만, 어떤 품종은 비교적 안정적인 모습을 보인다. 따라서 더운 날씨에서도 잘 자랄 수 있는 품종 개발과 보급이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힌다.


▲ 지난달 경북 구미시 금오산대주차장에서 열린 '새마을부녀회 2025 사랑의 김장 나누기'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김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치 산업 전체가 흔들릴 위험도 있다

배추 재배 면적은 지난 20여 년 동안 44%나 줄었고, 총생산량도 크게 감소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김치를 먹는 양은 크게 줄지 않았다. 즉 수요는 그대로인데 생산은 줄어드는 구조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 상황이 계속되면 다음과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김장철마다 가격이 크게 오르내리고, 김치 공장들이 원재료를 구하기 어려워진다.


농가들이 배추 재배를 포기해 국내 생산 기반이 더 약해지고, 결국 해외에서 배추를 더 많이 들여와야 할 가능성도 생긴다.

특히 연구에서는 지구 온난화가 계속될 경우 2090년대에는 여름 배추 재배지가 사실상 0%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국내산 여름 배추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우려다.

◇기후 대응부터 농업 기술까지, 여러 노력이 함께 필요

전문가들은 배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러 방향에서 노력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우선 기온 상승을 늦추기 위한 탄소 감축이 필요하다. 기온이 더 빠르게 오르면 배추가 자랄 수 있는 지역은 더 줄어들기 때문이다.

또한 더위에 잘 견디는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고 농가에 보급하는 일도 중요하다.

농업 현장에는 스마트 기술을 확대해 물·온도·벌레 관리를 자동화하여 농가 부담을 줄여야 한다.

그리고 강원도 중심이었던 기존 재배 구조에서 벗어나 지역별로 새로운 재배 전략을 마련할 필요도 있다.

아울러 가격 급등에 대비해 재배보험이나 비축 시스템 같은 국가 차원의 안전장치도 함께 강화되어야 한다.

기후변화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고랭지 배추 농가가 수확을 포기하고 재배지가 줄어드는 등 현실적인 어려움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 식탁의 기본인 김치를 안정적으로 지키기 위해서는 기후 대응, 기술 개발, 품종 혁신, 정책 지원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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